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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르트르의 ‘허리’에서 시작해 ‘사유’에서 맺다

등록 2009-05-08 21:00수정 2009-05-08 21:03

〈사르트르 평전〉
〈사르트르 평전〉
20주기 맞춰 철학자가 쓴 평전
여성 편력부터 사유 역사까지
초기·후기 나눠 철학 업적 평가




〈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앙리 레비 지음·변광배 옮김/을유문화사·3만5000원

<사르트르 평전>은 프랑스 ‘신철학’의 기수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장폴 사르트르(1905~1980·사진) 20주기를 맞아 2000년에 출간한 책이다. 원제가 ‘사르트르의 세기’인 이 평전은 철학자가 쓴 철학자 평전답게 통상의 전기물과 뚜렷이 구분된다. “사팔뜨기이자 콧소리 나는 작은 목소리의 키 작은 남자”에 관한 전기라면, 그 전기의 주인공이 언제 어떻게 ‘사팔뜨기’가 됐는지 알려주는 게 보통일 터인데, 이 평전에서는 그런 전기적 사실에 대한 친절한 서술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대신 이 평전은 사르트르라는 인간이 만들어간 사유의 역사를 충실히 되밟고, 그와 얽힌 당대 모든 지식인·사상가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사르트르를 중심에 세운 20세기 지성사를 창출한다. 레비의 서술 속에서 20세기는 그대로 ‘사르트르의 세기’가 된다.

이 책이 그렇게 사유의 역사를 밟는다 하더라도, 시작부터 사유 속으로 직진하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이 책의 중간쯤에서 사르트르가 전기라는 장르의 요건에 대해 한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전기라고 하는 것은 아래로부터, 발로부터, 다리로부터, 성기로부터, 요컨대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기는 “신체 전체의 요약”이 돼야 한다. 사르트르의 이 말을 충실하게 따른 것이 레비의 이 평전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사르트르의 하복부에서, 다시 말해 그 유명하고도 지칠 줄 모르는 여성 편력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오직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글을 썼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 이 게걸스러운 정복자의 모습에 뒤이어 사르트르의 영광이 전개된다. 1945년 마흔 살을 기점으로 하여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 된다. “사르트르의 등장은 마치 솟아오름과 같았다.” 지은이는 사르트르의 출현을 “세계의 탄생”, “정신의 혁명”에 빗댄다. 그가 가는 곳마다 열광을 넘어 광기가 흘렀고, 충격과 진동과 범람이 일었다. 사르트르는 그 자신이 하나의 ‘정당’이었고, ‘국가’였고, ‘국가원수’였다. 사르트르의 이런 영광에 비례해 그에 대한 증오도 커졌다. 증오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사르트르는 “그 혼자만으로도 내전을 일으키는 전쟁기계”였다.

장 폴 사르트르
장 폴 사르트르
지은이는 명성과 오명 사이를 자유롭게 유목하던 이 ‘절대적 지식인’이 ‘초기 사르트르’와 ‘후기 사르트르’로 명확하게 갈린다고 말한다. ‘인식론적 단절’을 연상시키는 그 구분이 이 평전의 특징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사르트르가 사르트르로서 자립하기 위해 두 명의 막강한 적수를 이겨내야 했다고 말한다. 문학의 영역에서 앙드레 지드, 그리고 철학의 영역에서 앙리 베르그송이 그들이었다. 사르트르는 조이스·헤밍웨이·포크너 같은 영미 작가들을 탐독함으로써 지드의 자장에서 탈출했으며, 베르그송을 극복하려는 투쟁에 후설·하이데거·니체와 같은 독일 철학자들을 용병으로 기용했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사르트르의 위대함은 문학과 철학을 포함해 모든 지식 장르를 동시에 구사하고 동시에 엮어내는 ‘총체적 지식인’의 모습에 있다. 그 총체성으로 사르트르는 지드와 베르그송을 넘어 사르트르 자신이 되었다. 그것은 “스피노자이면서 스탕달이 되고 싶다”던 소망의 실현이기도 했다. 그 승리의 월계관이 소설 <구토>(1938), 철학서 <존재와 무>(1943)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런 승리의 과정에서 ‘초기 사르트르’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지은이는 여기서 또 한 번 독특한 주장을 펴는데, 그것은 이 초기 사르트르가 20세기 후반 프랑스를 수놓은 무수한 탈근대적 사유의 출발점이었다는 주장이다. 사르트르야말로 ‘이론적 반인간주의’ ‘주체의 죽음’의 선구자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도발적인 것은 탈근대 철학의 대표자들, 이를테면 알튀세르·푸코·들뢰즈가 하나같이 사르트르를 ‘주체의 철학자’ ‘인간주의(휴머니즘) 옹호자’라고 비판한 사실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구토>와 <존재와 무> 같은 저작에서 이미 사르트르의 반휴머니즘적 주체 비판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 책이 지닌 세 번째 독특함은 후기 사르트르에 대한 평가다. 이 시기, 그러니까 1952년 이후 사르트르는 공산주의 운동의 동반자가 되고 스탈린주의 소련을 옹호하며 마오쩌둥주의자들의 막역한 친구가 된다. 완전한 자유를 주창하고 그것을 실천하던 전기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여기서 자신을 이념과 운동에 구속시키는 존재가 된다. 그런 변신의 바탕을 철학적으로 보여주는 저작이 <변증법적 이성 비판>(1960)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저작은 후기 사르트르의 사유가 집적된 대표작으로 평가받지만, 지은이는 이 책이야말로 사르트르의 철학적 실패를 보여주는 저작이라고 단언한다. 사르트르가 헤겔이라는 거대한 정신에 맞서 일대 결전을 벌였지만 그 헤겔에게 패배한 뒤 헤겔주의의 동일성·주체성 철학으로 떨어지고 말았고, 그런 패배의 정치적 발현이 교조적 좌익 운동 투신이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전기의 실존주의 자유 투사 사르트르를 사랑하고 후기의 공산주의 동반자 사르트르와 거리를 두려 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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