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태(68)씨의 열 번째 소설집 <생오지 뜸부기>(책만드는집 펴냄)에는 작가가 2006년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뒤 자리잡은 전남 담양군 남면 생오지 마을에서 쓴 여덟 단편이 묶였다. ‘생오지’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작품이 셋이며 나머지 작품들도 대부분이 이곳으로 짐작되는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지 중의 오지’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버스도 다니지 않고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이 마을이 작가에게는 더없이 풍요로운 창작의 산실이 된 것이다.
맨 앞에 실린 단편 <그 여자의 방>은 어린 시절 옆집에 살며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냈던 여인 앵두의 죽음을 맞아 그를 문상하고자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미국의 대학교수를 화자로 삼는다. 고향의 부엌방에서 태어나 자란 후 도시로 나가 높은 학교를 다니고 유학 가서도 여러 기숙사를 전전했으며, 귀국해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했다가는 다시 미국의 대학에 자리를 구해 뉴욕 근교의 저택에 정착하기까지 ‘나’가 거쳐 간 방은 서른 개가 넘는 것으로 헤아려진다. 그에 반해 앵두의 생애는 서너 평 남짓 됨 직한 좁은 방에 한정될 따름이다.
옛연인·귀향민·베트남새댁…사람사이 벽은 허물어지고
버스 없고 휴대폰 안터지는 마을서 쓴 여덟 개 단편 묶음집
“앵두는 이 좁고 오래된 방에서 태어나 65년을 살았다. 이 방에서 자라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으며 스물한 살에 결혼하여 첫날밤을 치렀다. 그리고 이 방에서 남편을 떠나보냈으며 이제 생을 마감하고 죽음을 맞았다.”(14쪽)
“방이란 클수록 더 마음이 공허하고 작을수록 삶이 꽉 찬 기분을 느낄 수 있다”(15쪽)는 ‘나’의 감상은 앵두와 자신의 삶의 공간을 비교해 본 끝에 나온 나름의 결론이다. 이 소설에서 ‘나’가 앵두와의 지난 추억을 돌이켜보면서 손수 앵두의 주검을 염하는 장면은 그가 애써 외면하고 망각하려 했던 고향의 순수하고 소박한 삶을 상대로 한 화해의 의식처럼 읽힌다.
서울의 모교 강단에서 ‘글로벌 시대의 장벽 허물기’를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된 그가 “중요한 것은 공간의 장벽 허물기가 아니라 사람의 장벽 허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설정은 소설집 전체를 보아서도 의미심장하다. 이어지는 작품 <탄피와 호미>는 아무런 혈연도 없이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세 사람의 삶을 다룬다. 아내와는 사별하고 외동딸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 간 ‘나’와 탈북 여성 점순이, 그리고 어린 나이에 노숙자로 지내다가 끔찍한 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열한 살 영미가 그들이다. 이들이 사격장 근처에서 주운 탄피로 호미 세 자루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으로 맺어지려 한다는 결말부의 암시와 더불어, 폭력과 상처를 극복하고 평화와 생명의 일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생오지 뜸부기>와 <생오지 가는 길>, 그리고 <황금 소나무> 등 ‘생오지 연작’ 세 편에서 이 마을은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표제작은 “골병 들게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만 나”(126쪽)는 농촌을 뜨려는 오씨와 “서울에서 실패한 인생을 시골에 와서 보상받고 싶”(131쪽)다는 ‘나’의 처조카 사이의 엇갈린 행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작품에서 정든 고향을 뜨기 싫어하는 오씨 노모의 말은 <그 여자의 방>의 주제의식에 이어지는 것이어서 새겨 들을 만하다. “넓은 세상에 산다고 답답허지 않은 것이 아니여. 손바닥만큼 좁은 세상에서 살어도 마음을 넉넉하게 풀고 살면 답답허지 않은 벱이여.”(136쪽)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몽골인 며느리 멍질라는 <생오지 가는 길>의 베트남인 며느리 쿠엔과 연결되면서 좀 더 큰 의미의 장벽 허물기라는 주제의식을 구축하는 데 일조한다. 따이한 병사들에게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는 쿠엔과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조씨 할아버지, 그리고 광주항쟁 때 계엄군의 총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된 쿠엔의 남편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안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은 두 나라의 역사적 상처가 오히려 연대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적극적 인식을 보여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책만드는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