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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수학,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상상력

등록 2009-06-19 20:01수정 2009-06-19 20:02

〈수학 읽는 CEO〉
〈수학 읽는 CEO〉
사회과학 공부 이력 수학자 지은이
문명의 뿌리·진리로서의 가치 기술




〈수학 읽는 CEO〉
박병하 지음/21세기북스·1만5000원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수학자가 주인공인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물론 제일 먼저 진실에 도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증명은 아름답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일하던 파출부가 묻는다. “증명에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고가 있나요?”“진짜 증명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딱딱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지. (…) 왜 별이 아름다운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수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도 곤란하지만 말이야.”

차라리 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는 쉬워 보인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12년 동안 수학을 공부하는 보통 사람 가운데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아니 인정이라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나 될까.

a²+b²=c²

‘어떤 삼각형의 한 각이 직각이면, 빗변의 제곱과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같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다. 중학생도 아는 이 공식에 관해 유클리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의 수많은 석학들이 자기만의 증명법을 도출하기 위해 연구했다. 왜 이들은 단순해 보이는 이 정리에 그렇게 열광하고 매달린 걸까.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문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 뿌리를 통해서 도형과 직각의 개념이 줄기를 올렸고 그것을 통해 건축과 과학기술이 꽃을 피워 고대 피라미드에서 컴퓨터까지 출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복잡다단한 거대한 문명의 발전을 떠받치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진리. 이것에서 수학자들은 고귀한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수학 읽는 CEO〉는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수천년 동안에 이뤄진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조망하며 수학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기술한다. 지은이는 러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딴 수학자이지만 수학을 공부하기 전 사회과학을 공부했던 이력과 지식을 이용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학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와 함의에는 무관심했던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말이다.

수학,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상상력.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t
수학,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상상력.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t
지은이가 말하는 수학의 가장 큰 가치는 상상력이다. ‘수학적 계산은 예술적 창조와 정반대의 행위이며 상상력의 적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계산들은 한때 치열한 상상력의 결과였다.’ 한 예로 곱셈만 보더라도 지금이야 초등학생도 쉽게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막대기를 분주하게 옮기며 계산을 해야 했다. 그러나 수많은 수학자들이 새로운 곱셈법을 제시해오다가 세로로 두 숫자를 배치해 십 단위로 끊어 곱셈을 한 뒤 더하는 지금의 ‘긴 곱셈법’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유클리드의 악명 높은 ‘평행선 공리’도 있다. “어떤 직선 a가 있고 그 직선을 지나지 않는 점 O가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 b는 딱 하나다.” 간단하게 점과 직선 두 개만 그리면 쉽게 이해가 가는 이 공리는 오랜 세월 수학자들을 의심하게 만들면서 괴롭혀 온 주제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한 수학을 배운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한 생각’으로 여기지만 이 기하학이 불완전하다고 믿어왔던 학자들은 끊임없이 이 문제에 도전했고 20세기 목전에 들어서야 평행선 공리는 증명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증명의 열쇠에는 새로운 상상력이 놓여 있다. 즉 흔히 생각하듯이 ‘평면이 더 이상 네모난 종이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판 모양으로 둥글다’는 발상의 전환을 도입하면서 평면과 직선, 거리, 각에 대한 기존 직관을 수정했고, 평행선 공리 역시 절대적 진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상상을 통한 틀의 파괴, 패러다임의 전환은 예술에서의 미적 체험과도 다르지 않다. 육안의 관점으로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만이 절대적 아름다움일 수 없다는 걸 피카소의 큐비즘이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지은이는 수학을 통해 늘 당연시해온 직관을 의심하는 힘, 부분에서 벗어나 전체의 그림을 그리는 능력, 생각의 잔가지를 치고 단순하게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렇다고 중고등학교 시절 애먹던 수학의 추억이 아름다워질 수야 없겠지만 재미있게 패턴화되는 책 속의 공식과 간단한 규칙들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좌뇌를 적당히 자극하는 두뇌운동이 될 것 같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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