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저녁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14회 한겨레문학상 시상식 직후 수상자와 심사위원 등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대표, 소설가 김형경씨, 수상자 주원규씨, 문학평론가 황광수씨, 이기섭 한겨레출판 대표, 소설가 최인석씨. 시상식에는 이들 외에도 예심위원인 소설가 김별아·박성원·손홍규·심윤경씨, 평론가 고명철·오창은·이명원·정은경씨, 역대 수상자들인 김연·박정애·권리·조영아·서진·윤고은씨, 시인 나해철·민병일씨와 소설가 은미희·백가흠씨 등이 참석했다.
김태형 기자 xogud@hani.co.kr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열외인종 잔혹사’ 출간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주원규(34·사진)씨의 소설 <열외인종 잔혹사>(한겨레출판사)가 책으로 나왔다.
<열외인종 잔혹사>는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을 즐겨 입는 극우파 노인, 정규직을 꿈꾸는 인턴사원, 컴퓨터게임에 몰두하는 10대 후반 청소년, 그리고 노숙자 같은 ‘열외 인간’들이 자본주의의 심장부라 할 코엑스몰에서 벌어지는 혁명 소동에 휩쓸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서로를 알지 못하는 이 인물들이 한날 한시에 동일한 공간에 모여들어 엉뚱하고도 놀라운 사건에 휘말려드는 과정을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 그려 나간다.
천민 자본주의 막장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
우연히 만나 얽히는 과정 ‘풍자·해학’ 가득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11월 24일’은 극우파 노인 장영달과 인턴사원 윤마리아, 게임광 기무, 그리고 노숙자 김중혁이 11월 24일 아침부터 시작해 나름의 사정과 이유로 코엑스몰에 집결하는 오후 4시까지를 인물별·시간대별로 서술한다. 제2부 ‘최악의 도시’는 코엑스몰에 모인 네 사람이 양머리 탈을 쓰고 총을 든 무리들이 벌이는 혁명 소동에 연루되면서 겪는 아슬아슬한 모험을 다룬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던 인물과 상황이 코엑스몰이라는 단일한 공간으로 수렴되어서는 한꺼번에 폭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1부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신상을 묘사한 문장은 이 소설의 풍자적·해학적 문체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녀 역시 ‘이태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모두 실천한 여인네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일도, 철마다 토익, 토플 시험 보는 일도, 국가 공인이든 민간단체, 협회 주관이든 가리지 않고 소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자격증 시험은 죄다 치러낸 결과가 이렇듯 외국계 제약회사 인턴사원 자리인 것이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보이는 건 지하철이요, 사람이요, 건물이요, 계단이요, 소주병일 뿐이다. 광록의 표현을 빌리면, 노숙자들이 이러한 상태로 몰입하는 것은 적멸의 경지였다. 뇌의 모든 기능이 멈춰버리는 경지, 생각이란 게 더는 필요없게 된 상태. 그 경지에 이른 것이 바로 지금의 김중혁이다.” 장영달과 윤마리아는 제약회사의 임상 체험 건으로, 김중혁은 노숙자 단속반을 피해서, 그리고 기무는 컴퓨터게임 업체의 신형 게임 이벤트에 참가하느라 각각 코엑스몰로 모여든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머리 탈을 쓰고 총을 든 채 혁명 선언서를 낭독하는 정체 모를 집단이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으며, 기다릴 만큼 기다려왔다.(…)이 거대한 도시의 맘몬과 싸우기 위해, 자본가와 정치가 그리고 이 땅의 목자이며 지도자이기를 자처하는 저 쓰레기들이 감히 앉지 말아야 할 성스러운 자리를 차지한 이 추악한 악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노인들과 비만 여성들을 필두로 ‘혁명의 적들’에 대한 처단이 차례로 진행되는 가운데, 칠순을 넘긴 장영달은 자신이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들과 생사를 건 무규칙 이종격투기에 나서고, 기무는 실탄이 든 권총으로 양머리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며, 윤마리아는 자신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줄 것으로 믿는 양머리들의 두목을 면담하러 나선다. 그러나 두목이 부하들의 총에 맞아 죽는 등 극심한 소요의 와중에 양머리 탈로 위장한 김중혁이 새로운 두목으로 추대되고, 결국 기무의 총에 맞아 죽는다….
김중혁이 양머리들의 두목으로 추대되는 대목까지는 동료 노숙자 광록이 읽었다는 예언서의 내용과 들어맞는 듯하다.
“우리 노숙자들, 열외인종들 중에서 왕이 나타난다는 얘기야. 그 왕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 도시를 완전히 뒤엎어버려서 우리에게 권력과 힘을 송두리째 넘겨준다 이 말이지.”
그러나 김중혁의 어처구니없는 최후는 그가 메시아가 아닌 희생양임을 말해준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천민자본주의의 막장”에서 “그 무엇엔가 험악하게 분노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열외 인간들의 대표선수’가 바로 김중혁인 셈이다.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우연히 만나 얽히는 과정 ‘풍자·해학’ 가득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 ‘11월 24일’은 극우파 노인 장영달과 인턴사원 윤마리아, 게임광 기무, 그리고 노숙자 김중혁이 11월 24일 아침부터 시작해 나름의 사정과 이유로 코엑스몰에 집결하는 오후 4시까지를 인물별·시간대별로 서술한다. 제2부 ‘최악의 도시’는 코엑스몰에 모인 네 사람이 양머리 탈을 쓰고 총을 든 무리들이 벌이는 혁명 소동에 연루되면서 겪는 아슬아슬한 모험을 다룬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던 인물과 상황이 코엑스몰이라는 단일한 공간으로 수렴되어서는 한꺼번에 폭발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제1부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신상을 묘사한 문장은 이 소설의 풍자적·해학적 문체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녀 역시 ‘이태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모두 실천한 여인네다.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일도, 철마다 토익, 토플 시험 보는 일도, 국가 공인이든 민간단체, 협회 주관이든 가리지 않고 소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자격증 시험은 죄다 치러낸 결과가 이렇듯 외국계 제약회사 인턴사원 자리인 것이다.”
“목적도, 이유도 없다. 보이는 건 지하철이요, 사람이요, 건물이요, 계단이요, 소주병일 뿐이다. 광록의 표현을 빌리면, 노숙자들이 이러한 상태로 몰입하는 것은 적멸의 경지였다. 뇌의 모든 기능이 멈춰버리는 경지, 생각이란 게 더는 필요없게 된 상태. 그 경지에 이른 것이 바로 지금의 김중혁이다.” 장영달과 윤마리아는 제약회사의 임상 체험 건으로, 김중혁은 노숙자 단속반을 피해서, 그리고 기무는 컴퓨터게임 업체의 신형 게임 이벤트에 참가하느라 각각 코엑스몰로 모여든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머리 탈을 쓰고 총을 든 채 혁명 선언서를 낭독하는 정체 모를 집단이다.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으며, 기다릴 만큼 기다려왔다.(…)이 거대한 도시의 맘몬과 싸우기 위해, 자본가와 정치가 그리고 이 땅의 목자이며 지도자이기를 자처하는 저 쓰레기들이 감히 앉지 말아야 할 성스러운 자리를 차지한 이 추악한 악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우리는 과감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주원규(3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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