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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대의 낚시꾼 ‘독자를 낚는 비법’

등록 2009-09-18 18:48수정 2009-09-18 18:59

〈유혹하는 에디터-고경태 기자의 색깔있는 편집노하우〉
〈유혹하는 에디터-고경태 기자의 색깔있는 편집노하우〉




〈유혹하는 에디터-고경태 기자의 색깔있는 편집노하우〉
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인터넷에서 ‘낚시질’이란 좋은 말이 아니다. ‘충격’ ‘비밀’ 등 자극적인 제목이 클릭을 유혹하지만 별 내용 없는 기사나 글에는 ‘낚였다’라는 핀잔 어린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경쟁의 봇물인 요즘 세상엔 누구나 낚시꾼의 운명을 지닌다. 수천 통의 자기소개서 가운데 내 것을 인지시키려면 인사평가위원을 ‘낚아야’ 하고, 경쟁 치열한 문학상 공모전에서 예선 통과라도 하려면 맨 앞장에서 심사위원을 ‘낚아야’ 한다. 인기 블로거가 되는 방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경태 기자는 ‘희대의 낚시꾼’이다. <한겨레21> 창간 때 편집기자로 입사해 기자로, 나중에는 편집장으로, 그가 쓰고 고친 제목에 수많은 독자들이 ‘낚였다’. 그가 신문광고문안을 써온 11년2개월 동안 매주 광고를 일부러 찾아 보는 팬들까지 생겼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했을 때 ‘미사일은 월요일에 쏘지 마!’라고 신문에 인쇄된 광고 제목을 보면 도무지 호기심을 억누를 길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은 세계정세 예측이 아니라 마감 다 끝내고 인쇄 들어가기 직전 이 사건으로 표지 기사를 대체하느라 기자들을 고생시킨 부시 정권을 향한 질타였으니 일부 독자는 ‘낚였다’고 격앙했겠지만 대다수 독자들은 그 엉뚱발랄함에 매료됐다. 이처럼 딱딱하고 권위적인 시사주간지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수많은 제목과 광고문안들은 새로운 카피 형식의 전범이 됐다.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지은이가 제시하는 편집과 제목 달기, 기획과 글쓰기의 노하우는 그가 20년 가까이 시도해온 형식의 도발과 무관하지 않다. 앞부분에 펼친 편집론 한 꼭지의 소제목은 ‘선정주의를 찬양함’이다. 언론 윤리에서 선정성은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는 이걸 뒤집어본다. “나는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기사를 쓰거나 지면을 꾸밀 바에는 선정적인 편집 자세를 갖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편집자는 가끔 뻥도 쳐야 한다. 사기 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뻥과 사기를 치느냐가 문제다. 밉지 않게, 얼굴 찌푸려지지 않게 치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는 선정성이 ‘여유’와 ‘자신감’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는 십계명 첫 번째로 ‘법을 무시해 보라’는 전복적인 제안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행과 매뉴얼에 매달려 있으면 “중간은 가겠지만” 결코 비범하거나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제안들은 단지 기능인으로서 편집자나 출판인들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말하기나 글쓰기가 자기계발서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만큼 자기 어필이 중요한 시대에 귀기울여 볼 만한 대목들이 많다. ‘첫 문장은 유혹이다’라는 제안을 이해했다면 면접시험에서 “저는 0000년 ##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식의 자기소개를 꺼내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각각의 본문 뒤편에는 어린 시절부터 <한겨레21>과 <한겨레> esc팀을 거쳐 지금의 <씨네21> 편집장으로 일하기까지의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소년중앙>에 열광하던 꼬마 적에 직접 만화와 표지를 그리고 바느질로 제본을 한 열장짜리 갱지 꾸러미로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니 “배우는 타고난다”고 했던 송강호의 말처럼 뛰어난 편집자는 타고나는 것 같기도 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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