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76)
필립 로스 소설 ‘에브리맨’ 한국 출간
소설 끝과 시작 죽음으로 한데 엮어
임종의 자리에 이르는 과정 형상화
소설 끝과 시작 죽음으로 한데 엮어
임종의 자리에 이르는 과정 형상화
필립 로스(76·사진)는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여성 동료 조이스 캐럴 오츠와 함께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는 한다. 그러나 수많은 미국발 대중소설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그의 작품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에브리맨>(정영목 옮김, 문학동네)은 로스의 작품 가운데 정식 판권 계약을 거친 첫 책이다. 2006년작인 <에브리맨>은 번역판으로 200쪽에 못 미치는 소품이지만, 매우 강력한 울림을 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어느 황폐한 공동묘지에서 치러지는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주인공은 그 장례식의 주인인 ‘그’다. 가족과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과 달리 시종 익명의 ‘그’로만 지칭되는 이 남자는 일흔한 살 나이에 수술을 받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도처에 있는 숱한 죽음의 하나일 뿐이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에브리맨>은 진부할 정도로 평범한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참석했던 이들이 모두 떠난 뒤 컴컴한 땅속에 홀로 남은 그의 지난 삶을 들려준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에브리맨 보석상’ 일을 돕던 행복했던 소년기, “어린 시절 그의 숭배의 대상이었”던 형 하위, 그리고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아들과 두 번째 부인 피비와의 사이에서 생긴 딸 낸시, 그리고 결혼 제도의 안과 밖에서 그가 안았던 여자들…. 소설 제목은 아버지의 보석상 이름에서 따왔지만, 동시에 ‘누구나 모두’ 겪는 죽음의 운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에브리맨〉
9·11 테러 뒤 그는 “나한테는 생존에 대한 뿌리 깊은 애착이 있어. 나는 여기서 빠져나갈 거야”라는 말을 딸에게 남기고 바닷가 은퇴자 마을 스타피시비치에 내려온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사는 그곳에서 그가 만난 것은 불확실한 테러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이 아니라 눈앞에 닥쳐온 죽음에 대한 공포, 바로 그것이다. 뉴욕을 빠져나온 그도 임박한 죽음으로부터는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죽음은 스타피시비치에만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는 예전 광고회사 동료들의 부음과 말기 암, 자살 미수 등의 소식을 듣는다. “노년은 전투예요(…)가차없는 전투죠.” 작고한 옛 상사의 부인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는 그 말을 이렇게 고쳐 듣는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이제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그의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입원을 할 때마다 그의 병상 옆에 머무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어, 처음 그와 함께 출발했던 군대는 다 사라지고 결국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에 그는 고통스러워한다. 게다가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 자신의 책임이다! 결국 그는 병상을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죽음을 맞는다. <에브리맨>은 죽음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최재봉 문학전문 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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