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20세기 실패’ 철없는 반복…‘4대강 착각’

등록 2009-10-16 19:09

지난해 4월1일 생명평화 순례단이 부산 사상구 낙동강 을숙도에서 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에 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4월1일 생명평화 순례단이 부산 사상구 낙동강 을숙도에서 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에 삼배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에선 1990년대에만 하천 댐 177곳 철거
“강물 가로막는 개발, 인간이 손해보는 장사”
〈생명의 강〉
샌드라 포스텔, 브라이언 릭터 지음·최동진 옮김/뿌리와이파리·1만5000원

자말 나세르가 강행한 아스완 하이 댐 건설에 의문을 품었던 이집트 정부의 한 관리가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시 <루바이야트>의 다음 한 구절을 인용해 비꼬았다고 한다.

“한낮에 왕이 입을 열어 한밤중이라고 말하면, 머리 잘 돌아가는 자들은 달이 보인다고 말한다.” 이집트에도 권력자만 바라보는 아부꾼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스완 하이 댐은 1960년대에 시작해 1971년에 완공됐으니 그나마 20세기의 작품이었다.

〈생명의 강〉
〈생명의 강〉
21세기에 강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강 개발의 경제적·경제외적 효과에 대한 계산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젠 쌓았던 댐을 허물거나 인간의 필요에만 맞췄던 수량 조절을 강과 강 자체의 수요에도 맞추려는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생명의 강>(뿌리와이파리)은 그런 전환을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21세기 한국에서 4대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20세기형 거대 토목공사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일 수 있는지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한 템포 늦는 것 같다. 공화당 정권 붕괴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등장으로 귀결된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가 최근 일본 자민당 55년 체제 붕괴와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통해 재확인됐음에도 한국은 이제야 신자유주의의 본격 추진을 다짐하는 정권이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중심부가 선행하고 주변부·반주변부가 뒤따르는 오랜 관행의 무비판적 수용이 낳은 이런 시대착오를 이젠 탈피할 때도 됐건만 우리는 21세기에 오히려 20세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왕이 입을 열자’ 모든 관리들이 한낮에 달이 빛난다고 외치고, 환경보호를 주임무로 하는 관리들조차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꿔 4대강 토목공사가 ‘4대강 살리기’라 복창하고 있다. 200여년에 걸쳐 댐과 제방을 쌓고 하천의 직선화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미국이 20세기 말부터 환경에 끼치는 손실이나 안전상의 위험을 정당화할 만큼의 편익을 인간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댐들부터 철거해가고 있다. 1970년대에 20개, 1980년대에 91개, 1990년대에 177개 댐이 철거됐다.

“5년 전에 사람들은 댐 철거 문제가 나오면, 왜 하느냐,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따졌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댐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철거할 거냐고 묻습니다.” 댐을 철거하자는 생각은 한때는 과격한 생각이라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점점 일반화돼 가고 있다고 <생명의 강>은 전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0개 국가, 230여개 하천에서 유황(流況. 장기간에 걸친 하천의 유량, 유속, 수위 등의 변동 패턴)을 자연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150개 이상은 실행 단계에 들어갔고 그 가운데 3분의 1개 사업에서는 하나 이상의 댐이 철거됐다.

미국에선 메인주의 케네벡 강 댐 등 여러 개의 댐들이 철거됐고 콜로라도 강 댐은 운용을 자연 상태의 흐름에 가깝도록 변경했다. 프랑스도 비엔 강 댐을 철거했고 캐나다도 뉴펀들랜드의 파메헥 강 댐을 철거했다. 타이는 문 강 댐 갑문을 개방했으며 영국도 옥스퍼드의 콜 강 댐을, 오스트레일리아는 뉴사우스웨일스의 그위디르 강 댐 운용체계를 바꿨다. 댐이 낡았거나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담수생물 다양성과 생태계를 보전하고 인간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기존 인간 위주의 토목적 하천 이용은 수많은 담수생물들을 멸절시켰을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경제외적 효용을 가져다주는 자연생태계를 망가뜨렸다.

둑을 쌓고 댐을 막아 홍수와 수량을 조절하고 관개와 음용수, 산업용수를 확보해온 하천 토목공사가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낳고 인류의 성장에 기여해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자연 개조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인간 편익 위주로만 진행하는 개발은 지속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용 대비 편익 계산으로 따져도 수지가 맞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게 지은이들 주장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버몬트대학의 로버트 코스탄자는 생태학자들과 경제학자들로 연구팀을 꾸려 16개 생물군계의 17가지 생태계 서비스가 지닌 경제적 가치를 평가했다. 그 결과, 지구 전역에서 수행되는 생태계 서비스의 가치는 연간 16조에서 54조달러(1994년 달러시세 기준), 평균 33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당시 전세계 국민총생산(GNP)과 맞먹는 규모였다. 개별 생태계 평가액도 마찬가지. 예컨대 담수습지와 하천 범람원은 물을 저장하고 홍수를 완화하고 오염물질을 분해, 정화해 헥타르당 연간 약 2만달러의 수익을 냈다. 범람원만 보더라도 1㎥당 9600~1만4500달러의 수익을 낳는다는 계산이 나왔다.

미국은 중부의 거대하천 미주리 강 되살리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강은 20세기에 수많은 댐과 제방, 저수지를 쌓고 선박들이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을 파내고 직선화했다. 미주리강 선박 통행량은 오늘날 25년 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선박 운항으로 발생하는 연간 순수익은 약 3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미주리강 댐과 둑을 헐거나 댐, 저수지를 통한 수위 조절을 자연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고, 수만 헥타르의 사유지를 매입하고 공유지를 활용해 습지와 범람원도 복구시키는 것은 그런 체험적 사실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21세기에 토목개발 수익에 대한 지역주민의 기대만 잔뜩 부채질해놓고 그들의 지지를 이유로 20세기식 4대강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것은 ‘매표정치’꾼들의 범죄적 선동 내지 야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