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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같은 책 서문을 네번이나 쓸 줄이야”

등록 2009-10-23 20:11수정 2009-10-23 20:21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30년간 정치범 필독서로 사랑
“야만의 시대 견디는 법 알려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개정판 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겨울을 일러 겨울이라 했다는 이유만으로 쫓기고 투옥되던 시절이었다. 수인의 고립감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시절에 쫓겨 유예해 둔 부정(父情)을 돌연히 일깨웠던 것일까. 옥에 갇힌 사내들은 다산의 이 한 문장에 눈물을 쏟았다. “우리는 폐족(廢族)이다.”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유배중인 다산이 두 아들과 형에게 보낸 서간 모음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였다.

“책이 처음 나온 게 10·26 직후니, 한 세대가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서른일곱의 팔팔하던 사내가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네가 돼 버렸어요. 그사이 몇 편의 글이 대학 교재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사랑을 받았으니 역자로서는 아쉬움이 없습니다.”

<유배지…>의 출간 30년을 맞아 최근 네 번째 개정판을 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같은 책의 서문을 네 번이나 쓰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감회에 젖었다. “나라 전체가 유배지였던 아픈 현대사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979년 고 조태일 시인이 대표로 있던 시인사에서 초판이 나온 이 책은 1991년 창작과비평사로 판권이 넘어가면서 개역판을 내고 2001년 가필·증보를 거쳐 3판이 나온 것을, 이번에 번역 일부를 손질하고 새 편지글 몇 편을 추가로 넣어 4판을 냈다.

“1980년대 감옥에 간 정치범들한테 필독서였어요. 자기들 처지가 오지에 유배된 다산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던 거지요. 비단 갇힌 사람들한테만 울림을 줬던 게 아닙니다. 다산의 가르침은 ‘자기 땅에 유배당한 사람들’ 모두에게 어두운 야만의 시대를 견디는 법을 일러준 것이지요.”

감옥에서 많이 읽혀 유명해졌지만 <유배지…>는 감옥이 탄생시킨 책이기도 하다. 책에 대한 박 이사장의 구상이 싹튼 곳이 광주교도소였던 것이다.

“1973년 전남대 함성지 사건으로 옥살이를 할 때입니다. 다산의 <여유당전서>를 정독하는데,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들이 마음에 확확 와닿는 겁니다. 번역해 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출옥한 뒤 한동안 엄두를 못 내다가 때마침 출판사 차린 친구 조태일이한테 선인세 10만원을 받아 술 먹어버리고 난 뒤에 코가 꿰였지요.”

대학원에서 ‘다산의 법사상’에 대해 학위논문까지 쓴 박 이사장이었지만 막상 우리말로 옮기려니 막히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서간문체가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한학을 했던 부친의 도움을 받았다. 글 다듬는 과정에선 광주의 시 쓰는 후배들한테 원고를 돌려 읽히기도 했다.

“시의 근본을 논한 부분에 ‘항상 힘없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간절한 뜻을 가져야 바야흐로 시가 된다’는 구절이 있어요. 이걸 본 김남주가 그럽디다. ‘형님, 이 대목은 밑줄을 쫙 그어 인쇄해달라고 하시오.’ 그러곤 몇 달 있다가 남민전 사건으로 잡혀갔지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박석무 옮김/창비·1만2000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박석무 옮김/창비·1만2000원
책은 유배중인 다산이 두 아들의 처지를 걱정하며 쓴 편지들인 만큼 바른 몸가짐과 부지런한 독서를 권면하는 내용이 많다. 벼슬길이 막힌 아들들이 실의에 젖어 학업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조바심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독서하는 것 한가지밖에 없다”고 다그치거나, 폐족에서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부귀영화를 얻으려는 마음이 근본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용기를 북돋기도 한다.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분인 만큼 자식들에게도 엄격하고 치밀했습니다. 기 죽지 마라, 일가친척 잘 모셔라, 이런저런 책 읽고 글 지어 보내라, 술 마시지 마라 등등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단속하고 가르칩니다. 귀양살이 가서도 그 정도였으니, 함께 살았더라면 아들들 고생 참 많았을 겁니다.”(웃음)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사실이 있다. 다산의 두 아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박 이사장의 설명에서 궁금증이 비로소 풀린다.

“첫째아들 학연은 옹기 만드는 분원에서 주부라는 벼슬을 했어요. 시집과 함께 축산과 관련된 저서도 전해옵니다. 그런데 둘째 학유에 대해선 <농가월령가>의 저자라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게 없어요. 다만 학유와 가까웠던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여기에 ‘운포(학유의 호)가 죽었네. 지금 세상에서 어디 그런 사람 만날 수 있겠는가’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다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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