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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국 흥성 뒤엔 애덤 스미스의 ‘보이는 손’

등록 2009-12-11 20:50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
‘장기 20세기’ 조반니 아리기 2007년작
미국 헤게모니 몰락·중국 부상 ‘예언’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
조반니 아리기 지음·강진아 옮김/길·3만3000원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1세기의 계보>는 지난 6월18일 타계한 조반니 아리기(1937~2009)의 2007년 저작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경제학에서 출발해 역사사회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우리 시대의 중량 있는 좌파 학자다. 그의 저술작업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거시적 시야에서 조망한 3부작으로 응집됐는데, <장기 20세기>(1994),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1999), 그리고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가 그것들이다. 이 세 번째 책은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을 논증하고 중국의 흥성에 주목했는데, 출간 뒤 1년 만에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의 ‘예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했다.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장기 20세기>의 결론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장기 20세기>에서 아리기는 페르낭 브로델의 ‘장기지속’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세계 자본주의의 흥망과 헤게모니 국가의 이동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헤게모니 국가의 생산력이 실물부문의 팽창으로 정점에 이른 뒤 금융부문의 팽창으로 쇠퇴하는 장기 파동이었다. 실물적 팽창이 한계에 이르면 생산력을 지키기 위해 금융부문에 의존하게 되고, 실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금융이 과도하게 팽창하면 그 거품이 결국 붕괴한다는 설명이다. 금융적 팽창은 헤게모니 국가의 가을을 알리는 ‘시그널 위기’이며, 이 가을은 후발 헤게모니 국가의 ‘봄날’과 겹친다. 아리기는 이런 장기 파동이 베네치아(16세기)-네덜란드(17세기)-영국(19세기)으로 이어졌으며, 1870년대 이후 장기 20세기에 미국이 헤게모니를 이어받았다고 논증했다.

중국 흥성 뒤엔 애덤 스미스의 ‘보이는 손’
중국 흥성 뒤엔 애덤 스미스의 ‘보이는 손’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는 바로 여기서 이야기를 연장한다. 미국 헤게모니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시그널 위기를 겪었으며, 그 위기의 정치적 표출이 베트남전 패배였다. 금융부문 팽창으로 경제력을 떠받치던 미국에 남은 것은 ‘최종 위기’인데, 그 위기를 회피하려는 폭력적 노력이 이라크 전쟁이었다. 전쟁은 미국의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미국의 쇠퇴는 더욱 빨라져 ‘최종 위기’를 앞당겼다. 그렇다면 저무는 미국의 뒤를 이을 자는 누구인가. 아리기가 단적으로 지목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이 불러낸 알라딘 램프의 지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패배를 정치적으로 무마하려고 중국을 국제무대에 불러냈으며, 조지 부시의 ‘이라크 모험’의 진정한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미국의 최대 채권자가 중국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아리기는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때 세계 최빈국이었던 나라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주도적 지위로 끌어올린 중국 경제체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의 아주 새로운 지점은 이 질문에 답을 해주는 사람으로 <국부론>(1776)의 저자 애덤 스미스를 모신다는 데 있다. 아리기는 <국부론>을 면밀히 검토해 이제까지 ‘자유방임 경제’의 전도사로 알려졌던 스미스의 상을 완전히 거꾸로 세운다. 아리기는 말한다.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 이론가가 아니었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실상은 국가의 통치라는 ‘보이는 손’이었다. 국가가 법과 제도로써 시장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적절히 개입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스미스는 자본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라, 노동 친화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독점을 해체함으로써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을 강화시켜 이윤을 최대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면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가능한 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인 것은 스미스가 자본주의 옹호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리기는 스미스의 관심이 ‘자본’이 아니라 ‘국부’에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스미스는 국가가 시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가가 통치도구로서 시장을 부리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정치경제학자 스미스의 ‘시장경제론’이다. 스미스의 시장경제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아리기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경제를 자본가 중심으로, 자본의 노동 착취 중심으로 분석했으며, 그 분석은 19세기 유럽 경제 현실에 합당한 분석이었다. 스미스는 자본가가 사회의 지배자가 되기 이전의 시장경제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모델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아리기는 스미스가 당대(18세기) 중국 경제에서 그 모범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국가가 시장을 관리하고 그 시장에서 나온 국부를 사회복지에 돌리는 일종의 복지국가가 18세기 청 제국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라는 책의 제목이 성립한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스미스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주의 무한팽창 논리가 주도권을 쥐었고 중국의 폐쇄적 경제체제는 서구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어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중국은 자본주의 체제 논리를 일부 수용해 과거의 시장경제를 다시 발동시켰다. 그것이 덩샤오핑이 열어젖힌 ‘사회주의 시장경제’다. 아리기는 여기서 대다수 학자들이 일종의 ‘레토릭’으로 치부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진지하게 수용한다. 중국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 없고, 스미스가 말한 시장경제의 부활로 봐야 하며, 그 체제는 사회주의와 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리기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세계 경제의 헤게모니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리기는 미국 헤게모니가 해체된 뒤 중국이 그 헤게모니의 일부를 이어받을 것이며, 세계는 경제적으로 더 평등하고 정치적으로 더 평화로운 체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기대에는 강한 소망이 깔려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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