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담론과 문명교류〉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정수일 지음/살림·3만원 평생을 유라시아 지역의 문명사 연구에 매달려온 정수일(76) 전 단국대 교수가 다시 한번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은 책을 내놨다. 2002년 <문명교류사 연구> 이후 7년 만이다. 그 동안 발표했던 논문 15편을 한데 엮은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는, 문명이란 무엇인가, 문명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지은이는 “21세기는 문명교류의 무한확산 시대로서, 문명만이 인류가 지향하는 공생공영의 미래 세계를 이루게 할 수 있”는데, “작금 국내외의 학문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거기에 “주춧돌 한 장 쌓아놓고자 탐탁잖은 글이나마 썼다”는 겸양에선, 문명론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통해 자신의 연구 인생에 화룡점정을 찍으려는 노학자의 결기가 엿보인다. 참고문헌만도 사료, 논문, 연구서 등 226편에 이른다. 책은 1부 ‘문명담론’과 2부 ‘문명교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책은 ‘지중해 문명과 지중해학’(1부 1장)에 대한 일별로 시작한다. 지중해는 그리스·로마문명을 꽃피웠던 남부유럽뿐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아라비아반도까지 맞닿는다. 지중해를 ‘유럽의 내해’로 보는 건 유럽의 시각, 유럽의 언어다. 지중해 문명은 이집트문명→에게문명→페니키아문명으로 이어지는 여명기를 거쳐, 그리스·로마와 이슬람 제국 붕괴(13세기)까지 최소 5000년 동안 수많은 문명과 세력이 경쟁하고 교류하면서 생성됐다. 1부 2장 ‘문명담론과 문명교류’는 이 책의 제목이자 고갱이다. 지은이는 기존의 문명담론을 고찰한 뒤 문명교류론이라는 “시론(試論)적 명제”를 내놓는다. 근대적 문명담론은 19세기 문명진화론(허버트 스펜서), 문명이동론(에드윈 스미스), 문명순환론(아널드 토인비) 등으로 이어졌다. 이 담론들은 주로 정형화된 구조로서의 문명을 설명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타자론)을 필두로 하여, 문명충돌론(새뮤얼 헌팅턴), 문명공존론(하랄트 뮐러)과 같은, 문명 간의 관계 문제에 주목하는 현대적 담론들이 등장한다. 지은이는 여기서 특히 문명충돌론의 “근본적 오류”를 집중 비판한다. △문명 개념을 종교가 결정적 역할을 하는 단순한 가치체계로 축소하고 △문명 간의 ‘차이’를 ‘충돌’로 착각했으며 △지구촌의 분란을 불가피한 것으로 숙명화했다는 것이다. 그 대안적 담론이 ‘문명교류론’이다. 문명은 자생과 모방이라는 속성 때문에, 전파와 수용이 당위다. 문명의 풍성함과 새로움도 여기서 비롯한다. 지은이는 문명교류의 종국적 지향은 정신적·물질적 보편가치를 아우르는 ‘보편문명’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보편문명은 어떤 특정 집단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도,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공유’가 생명인 문명만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공통분모로 작용해 인류의 공생공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확대된다. 2부 ‘문명교류’에서는 앞서 설파한 문명교류론을 역사적 실례와 사료들로 논증한다. 고구려와 서역의 관계, 일본과 이슬람의 만남, 혜초의 서역 기행, 활자의 길, 고선지의 석국 원정, 종이의 전파, 해양 실크로드를 통한 도자문화 교류, 한국과 페르시아의 만남 등이 그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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