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굳세고 힘 있는 그의 예서체는 장엄했고, 수묵화에서 도달한 경지는 각별했다. 그의 붓길이 스민 묵란에는 득도의 아우라가 서려 있었다. 꽃대를 치고 그 위에 사뿐히 얹은 꽃잎은 소박한 민초의 얼굴 같기도 하고 그윽한 미소로 눈 감은 부처 같기도 했는데, 그 평화로움과 여유로움으로 보건대 그 자신의 얼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억지로 하는 법이 없어 호를 무위당(無爲堂)이라 했다. ‘좁쌀 한 알’ 같은 존재라 하여 스스로 일속자(一粟子)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좁쌀 한 알에 우주 만물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작은 공간 원주에 머무르면서 반도와 두루 통했고 우주와 교감했다. 원주가 민주화의 성지, 생명운동의 요람이 된 것은 오로지 그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일순(1928~1994) 선생은 ‘빈 중심’이었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히 움직여 사람을 부르고 뜻을 모았다. 무위당이 떠난 지 15년, 그가 정말 좁쌀 한 알처럼 잊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후학들이 선생의 생전 말씀을 모아 잠언집으로 펴냈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에는 기독교 성경은 물론이고 노장·동학 사상에 정통했던 무위당의 깨달음의 언어가 그의 성품 그대로 소박하게, 그러나 지극하게 담겼다. 책 후반부는 생전에 무위당 곁에서 말씀을 받아 적은 김경일 신부의 메모에서 추린 것들이다. 그는 말한다. “순정을 바치는 것이 최고의 예의다.” “진실을 위해 싸운다면 그 방법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김익록 엮음/시골생활·1만2000원.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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