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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들끓는 어둠 걷고 이제 포오란 집으로

등록 2010-01-14 18:51

최승자(58) 시인
최승자(58) 시인
최승자 11년만의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이다/ 오랫동안 내 시밭은 황폐했었다/ 너무 짙은 어둠, 너무 굳어버린 어둠/ 이젠 좀 느리고 하늘거리는/ 포오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내 시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부분)

최승자(58·사진) 시인이 <연인들>(1999) 이후 11년 만에 여섯 번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문학과지성사)을 내놓았다. 21세기 들어서 첫 시집인 셈인데, 인용한 대목에서 짐작되듯 시세계에 적잖은 변화가 보인다. 최승자 시의 전매특허와도 같았던 도저한 절망과 분열된 자의식, 자폐적 고통이 엷어진 자리에 도가적 관조와 무위의 시선이 들어섰다.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쓸쓸해서 머나먼> 부분)

병원에서 요양하며 낸 여섯번째 시집
절망과 고통 넘어 관조와 무위의 눈길

노·장과 예수, 동방삭이 공서하는 세계의 시간 관념이 우리네의 감각과 같을 수는 없다. 그 세계에서 10년이란 담배 한 대 피우는 동안 훌쩍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며(<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시간은 늘 괴어 있”(<시간의 잿빛 그림자>)거나 아니면 “순간에서 영원으로”(<그런데 여기는>) 비약하거나 한다. 이른바 “초시간적 시간”(<하늘 너머>)을 시인은 살고 있다.

시간의 원근과 농담(濃淡)에 대한 감각이 흐트러지는 것은 회복기 환자에게서 흔히 보이는 증상이다. 시인은 몇 해 전부터 심신 쇠약으로 포항의 한 병원에서 요양 중이며, 친척을 통해 출판사와 교정지를 주고받으면서 시집을 묶어 냈다. 그런 정황은 시집 앞머리 자서(自序)에 “오랫동안 아팠다”는 말로 요약되어 있는데, 그 문장이 아니더라도 이 시집이 긴 투병의 소산이라는 사실은 시집 곳곳에서 확인된다.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길 끊어진 시간 속에서/ 어둠만이 들끓고 있었다//(…)// 그 십여 년 고요히 끝나가고 있다/ 아직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나는 기억하고 있다> 부분)

“건널 수 없는 한 세계를/ 건넜던 한 사람이/ 책상 앞에서 시집들을/ 뒤적이고 있습니다”(<어떤 풍경> 부분)


<나는 기억하고 있다>의 인용 부분은 “그러나 분명 길이 있었음을/ 뛰고 뛰던 길이 있었음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로 이어진다. 이것을 <어떤 풍경>과 연결지어 본다면, 그 기억은 아마도 시집과 관련된 기억일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이 병을 딛고 다시 시를 쓰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한 구절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더더욱 써보자/ 무엇을 위하여/ 아무래도 좋다”(<더더욱 못 쓰겠다 하기 전에> 부분)

“황홀합니다/ 내가 시집을 쓰고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는 중입니다”(<바가지 이야기> 부분)

그러니까 이 시집은 시인의 그런 황홀한 꿈의 산물이다. 그 결과물이 독자들에게도 황홀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미망 혹은 비망 2>)거나 “일찍이 세계는/ 내 실패들의 전시장,/ 내 상처들의 쓰레기 더미”(<일찍이 세계는>) 식의, 일찍이 우리를 매료시켰던 최승자 시의 어두운 파괴력을 이번 시집에서는 찾기 어렵다.

시인은 염세와 냉소와 위악과 절망을 시로 살다가 종내는 몸으로 앓았던 터였다. 그것은 우리 비겁한 자들을 대신한 일종의 대속(代贖)이었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사막이 있었다”(<한 세월이 있었다>)로 표현되는 사막의 시간들에서 그는 가까스로 벗어나려 하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어둠과 사막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 있겠는가. 그보다는 시집 속에서 드물게 밝고 경쾌하게 그려진 새의 이미지에 주목해 보자. 여기서 새는 시인이 지향하는 명랑한 생명력을 표상한다. 그 새를, 우리는 격려하자.

“빙긋이 웃고 있는 나무 한 그루, 그 위에서/ 한 마리 새가 이 의식에서 저 의식으로/ 깡총거리며 놀고 있다”(<새 한 마리가>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과지성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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