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잠깐독서 /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의 새 장편 <풀밭 위의 식사>는 그의 ‘전공’과도 같은 사랑과 욕망의 문제를 파고든다. 소설 첫 장면에서 기현은 술집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여자 누경의 모습에 사로잡힌다. 매혹은 접근과 구애로 이어지지만 누경의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자신의 눈물로 제 뿌리를 적시며 생존하는 기이한 사막식물” 같은 누경은 앞선 사랑이 남긴 지독한 상처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소설의 몸통은 누경의 지난 일기에 기록된 강주와의 사랑의 전말로 이루어졌다. 서로의 어머니가 사촌 자매 사이인데다 둘 사이의 나이 차도 십 년이 훌쩍 넘으며 강주 자신은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전개되는 사랑이 순탄할 리가 만무하다. 그럼에도, 그 조건을 연료 삼아 둘의 사랑은 오히려 안타깝고 강렬하게 불타올랐으며 마침내 장렬하게 소진되었다. 누경이 기현을 만난 것은 그처럼 사랑의 감정이 싸그리 타고 난 재 위에서였다. “기현씨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요”라 말하는 누경을 다만 친구로서 지켜보겠노라며 기현은 한발 물러서는데, 그 순간 누경의 눈에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들어온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그렇게 새로운 상대에게 매혹된 누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기현의 시점으로 처리된다. 그렇다면 “사랑하며 살기를 바랐으나 사랑이 어긋나는 것을 받아들이며,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담담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기현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학동네·1만원.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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