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사제의 독백 통해
암울했던 칠레의 현대사와
기회주의자의 옹색함 그려
움베르토 에코, 폴 오스터, 루이스 세풀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외국문학 전문 출판사 열린책들이 독점적으로 번역 출간하고 있는 해외의 스타 작가들이다. 이 목록에 최근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사진)라는 이름이 추가되었다.
열린책들은 볼라뇨의 필생의 대작 <2666>을 비롯해 그의 장편과 단편집 12권을 내년 말까지 집중적으로 펴내기로 하고 짧은 장편 <칠레의 밤>을 먼저 선보였다. 이에 앞서 이 출판사는 지난달 단행본 형식의 신간 예고 매체인 ‘버즈북’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를 통해 볼라뇨 띄우기에 나섰다. 272쪽 분량에 666원이라는 파격적인 값이 매겨진 이 책에는 작가론과 인터뷰, 서평 등이 묶였다.
<칠레의 밤>(우석균 옮김)은 지난해 초 을유세계문학전집의 하나로 나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 이어 한국에는 두 번째로 소개되는 볼라뇨의 작품이다. 보수적인 사제이자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세바스티안 우르티아 라크루아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는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는 지금 죽어 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에서 세바스티안은 ‘늙다리 청년’이라는 환영(결국은 그의 양심의 목소리임이 드러난다)의 고발에 맞서 자신의 지난 삶을 옹호하고자 한다.
고발과 옹호의 핵심은 1973년이라는 칠레 현대사의 분수령을 싸고 돈다. 좌파연합 후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세바스티안은 “될 대로 되라지”라며 방에 틀어박혀 그리스 고전 독서에 매달린다.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아옌데가 대통령궁에서 자살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자 그는 “참 평화롭군”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그의 평화를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니라 피노체트를 필두로 한 군사평의회 위원들이었다. 그들에게 그가 비밀리에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하게 된 것. 극우파 군인들에게 마르크스주의라니? “칠레의 적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그들이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짐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피노체트의 설명이었다.
극도의 보안에도 불구하고 그가 새로운 권력자들과 각별한 사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걱정했던 대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접근하고 아부하는 자들이 더 많은 세태를 확인하면서 그는 안심한다.
은둔했던 그는 “바깥출입을 하기 시작했고, 내가 제일 좋은 세상은 아니라도 ‘가능한 세상’, ‘실제’ 세상에 있다는 막연한 느낌으로 산티아고의 공기를 호흡했다.” 새로운 질서에 적응한 것은 세바스티안만이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성적이었고(…), 모두가 칠레인이었고, 모두가 평범하고 신중하고 논리적이고 온건하고 진중하고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역설한바 악의 평범성의 전형적인 사례가 여기에 있다.
소설의 절정은 마리아 카날레스라는 여성과 그의 미국인 남편 지미 톰슨의 저택에서 벌어진 파티에서의 사건이다. 파티에 참석했던 한 인물이 화장실을 찾던 중 지하의 어느 방문을 열었다가 벌거벗고 손발이 묶인 채 철제 침대에 누워 있던 고문 피해자를 발견하지만, 그대로 문을 닫고 되돌아와서는 굳게 입을 다문다. 그 자신 카날레스 저택 파티의 단골이었던 세바스티안은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았다”고 변명하는데, 그 변명은 옹색하거나 비겁하다.
“혼자서는 역사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그는 다시 뻗대 보지만, 그것이 늙다리 청년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는 그 자신도 믿지 않는다.
번역판으로 150쪽이 조금 넘는 소설은 전체가 단 두 단락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문장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가 독립된 단락을 이루고 있으므로 사실상 소설 전체가 한 단락인 셈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를 연상시키는 이 밀도 높은 작품에서 인물의 내면과 바깥 사회의 현실은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시대의 불의에 눈감고 역사의 범죄에 힘을 보탠 한 일그러진 지식인의 초상이 음울하게 부조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