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했다. 책세상 제공
다수의 헌법, 정치권력과 긴장관계
“헌정주의 핵심가치는 관용과 중용”
“헌정주의 핵심가치는 관용과 중용”
〈헌법〉
이국운 지음/책세상·8500 책세상 출판사의 ‘개념사-비타 악티바’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국운 한동대 교수의 <헌법>은 헌법의 본질을 따져 묻는 책이다. 지은이는 근대적 헌정주의 이념이 성립하게 된 경위를 밝힘으로써 ‘헌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논의를 펴기에 앞서 지은이는 헌법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몇 가지 풍경을 펼쳐 보인다. 그 풍경들 가운데 하나가 2008년 봄의 촛불집회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은이는 이렇게 헌법 조항을 노래하는 것은 헌법의 본질을 묻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권력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이 근대 정치의 본질적 속성인데, 그것을 지은이는 ‘표상 정치’라는 말로 표현한다. 표상 정치란 정치가 표상, 곧 대표(representation)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유권자의 뜻을 대표해 국회의원이 입법행위를 하는 것, 국민의 투표로 뽑힌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리는 것, 이것이 곧 표상 정치다. 대표하고 대리하고 대의하는 것, 요컨대 대신 행위하는 것이 표상이다. 국민이 직접 정치를 할 수 없는 이상, 근대 정치는 이 표상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의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표상’이 불완전한 해결책이라는 데 있다. 대리인이 유권자 또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거나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표상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다.” 이 한계 때문에 표상의 대상, 곧 국민이 표상 정치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직접 현실에 ‘개입’하는 일이 수시로 발생한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거나 거리로 나서거나 심지어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이런 직접 개입이 문제를 완전해 해결해 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의 뜻을 왜곡하는 표상 정치를 마냥 거부할 수도 없고, 표상 정치를 무조건 수용할 수도 없는 그런 딜레마가 정치의 본질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은이는 헌법이란 이 표상 정치를 극복하기 위한 기획, 혹은 좀더 온건하게 표현해서, 표상 정치의 타락을 막기 위한 기획이라고 말한다. 헌법은 표상 정치를 절대화하지도 않고 표상 정치를 아예 부정하지도 않는다.
헌법을 정치적 사고와 실천의 중심에 놓는 것이 ‘헌정주의’인데, 이 헌정주의의 역사를 지은이는 이렇게 요약한다. “헌정주의의 역사는 표상 정치의 필연을 인식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의 개입을 보장하려는 세련된 기획이자 부단한 노력이었다.” 표상 정치 안에서 어떻게 하면 표상 정치의 약점을 보완할 것인가 하는 고심 어린 노력의 역사가 헌정주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이 16세기 서양의 종교개혁이 지닌 정치적 의미와 그 영향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했고, 동시에 모든 기존의 종교적 특권을 거부함으로써 신 앞에서 인간의 원초적 평등을 제시했다. 이 평등의 논리에서 민주주의가 도출됐다. 종교개혁은 자유와 평등(민주)의 이념을 보편화시켰다. 그러나 이 이념은 ‘나의 진리, 우리의 진리가 진짜 진리다’라는 진리 독점적 사고를 퍼뜨림으로써 종교 간 전쟁, 종파 간 전쟁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가혹한 전쟁상태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대적 주권론이다. 주권이란 ‘절대적이고 영속적이며 어떠한 조건이나 법률의 제한도 받지 않는 최고의 독립적 권력’을 가리키는데, 이 주권을 절대 군주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정부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절대주의적 군주 주권론이다. 문제는 이 ‘절대주의’ 주권론이 폭정을 용인하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대항해 등장한 것이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의 핵심은 “주권자가 법인 것이 아니라 법이 주권자다”라는 명제에 들어 있다. 주권이 헌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주권을 만든다는 이 사상이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의 출발점이다. 이 헌정주의는 절대주의 대신에 관용과 중용의 가치를 헌법에 담으려 했다.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왕당파에 맞서는 의회파 정치철학의 핵심이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렇게 근대적 헌정주의가 절대주의에 맞서 출발했다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헌정주의는 절대 국가나 절대 주권 같은 개념을 거부하고 자치의 헌장인 헌법을 정치의 중심에 놓았다.” 결론에서 지은이는 헌정주의가 관용과 중용의 가치를 핵심으로 품고 있으며, 절대 주권론에 맞서 제한 주권론을 옹호하며, 삶의 다원성을 무너뜨리는 극단적 시도들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또 그럼으로써 헌정주의는 표상 정치의 타락을 막는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헌정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가지고 실제로 헌법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헌법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헌정주의는 헌법적 시민의 새로운 세대를 키워낼 때만 존속할 수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이국운 지음/책세상·8500 책세상 출판사의 ‘개념사-비타 악티바’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국운 한동대 교수의 <헌법>은 헌법의 본질을 따져 묻는 책이다. 지은이는 근대적 헌정주의 이념이 성립하게 된 경위를 밝힘으로써 ‘헌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논의를 펴기에 앞서 지은이는 헌법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몇 가지 풍경을 펼쳐 보인다. 그 풍경들 가운데 하나가 2008년 봄의 촛불집회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지은이는 이렇게 헌법 조항을 노래하는 것은 헌법의 본질을 묻는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권력의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일이 된다고 말한다.
〈헌법〉
지은이가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이 16세기 서양의 종교개혁이 지닌 정치적 의미와 그 영향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했고, 동시에 모든 기존의 종교적 특권을 거부함으로써 신 앞에서 인간의 원초적 평등을 제시했다. 이 평등의 논리에서 민주주의가 도출됐다. 종교개혁은 자유와 평등(민주)의 이념을 보편화시켰다. 그러나 이 이념은 ‘나의 진리, 우리의 진리가 진짜 진리다’라는 진리 독점적 사고를 퍼뜨림으로써 종교 간 전쟁, 종파 간 전쟁을 격화시켰다. 그 결과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가혹한 전쟁상태였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근대적 주권론이다. 주권이란 ‘절대적이고 영속적이며 어떠한 조건이나 법률의 제한도 받지 않는 최고의 독립적 권력’을 가리키는데, 이 주권을 절대 군주에게 부여함으로써 무정부적 전쟁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절대주의적 군주 주권론이다. 문제는 이 ‘절대주의’ 주권론이 폭정을 용인하는 논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대항해 등장한 것이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의 핵심은 “주권자가 법인 것이 아니라 법이 주권자다”라는 명제에 들어 있다. 주권이 헌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헌법이 주권을 만든다는 이 사상이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의 출발점이다. 이 헌정주의는 절대주의 대신에 관용과 중용의 가치를 헌법에 담으려 했다. 프로테스탄트 헌정주의는 17세기 영국에서 왕당파에 맞서는 의회파 정치철학의 핵심이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이렇게 근대적 헌정주의가 절대주의에 맞서 출발했다는 점을 지은이는 강조한다. “헌정주의는 절대 국가나 절대 주권 같은 개념을 거부하고 자치의 헌장인 헌법을 정치의 중심에 놓았다.” 결론에서 지은이는 헌정주의가 관용과 중용의 가치를 핵심으로 품고 있으며, 절대 주권론에 맞서 제한 주권론을 옹호하며, 삶의 다원성을 무너뜨리는 극단적 시도들에 저항한다고 말한다. 또 그럼으로써 헌정주의는 표상 정치의 타락을 막는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헌정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가지고 실제로 헌법 공동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헌법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다. 헌정주의는 헌법적 시민의 새로운 세대를 키워낼 때만 존속할 수 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