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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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모두 책 본문의 내용을 인용·재구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이다. 정치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경멸적 어조가 따른다. 그들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한다.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행동한다. (그러나) 정직한 정치인을 찾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언제나 뻔뻔한 거짓말쟁이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민주주의는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구분이 필요하다. 정치인에 대한 일반화된 폄훼와 개별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평가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더욱 정열적이고 능력있는 정치인에 대한 사회의 요구는 공허한 외침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정치인들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정치인들의 다양한 야망·특성·이념·활동·태만 등에 따라 사회는 진보의 길로 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정치인에 대한 토론이 정치에 대한 토론만큼이나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을 정치적 인간과 사적 인간으로 나누었다. 정치적 인간이란 공동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사적 인간은 오직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 가능한한 많은 정치적 인간, 그리고 가능한한 적은 사적 인간 -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공동체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완전히 반대가 됐다. 정치인의 위신은 이미 처참하게 땅에 떨어졌다. 사회에 널리 퍼진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의견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긍정적 정치인을 멀리하게 만든다. 사회구성원들이 정치인들에 대해 무심해질수록, 사회의 운명에 무심해지는 정치인들도 더욱 많아진다.
정권 바꿔도 달라진게 없다?
‘정치적 인간’ 되기 손놓은 탓
민주주의, 유지 아니라 쟁취
바른 선택 위한 토론과 참여
‘정치적 권태’ 전복시킬 씨앗 %%990002%% 이는 헌법파기, 권력기관의 무능, 모든 개혁에 대한 반대를 불러온다. 위기상황을 더욱 격화시켜 공화국의 와해와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온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폭넓은 토론 가능성은 일찍부터 제외된다. 의회에게는 형식적 인가를, 대중에게는 기계적 수용을 요구하는 기술지상주의적인 정부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그러나 (권력의 집중에 의한) 독재정치에서는 안정된 사회개혁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헌정 체제는 더욱) 쉽게 무너진다. (한때 민주주의 정치인의 표상이었던) ‘68세대’는 10-20년 전에는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전에 극단적으로 좌파를 대표했던 사람들은 이제 순응적인 관념과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오직 정권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하는 정치인들이 돼 있다. (이 세대를 통해 더욱 확산된 정치에 대한 권태 때문에) ‘위기’라는 이름의 볼록렌즈에는 ‘정치의 최소화’가 집중적으로 모이게 됐다. 거대한 정치적 계획에 대한 소극적 생각과 행동,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사람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합의방향,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분위기에 맞추려는 태도 등이 정치성의 성장을 정지시켰다. (따라서) 지도자를 바꿔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정권에 앉혀 놓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소유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설립할 때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인 민주주의 혁명이다.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 요구는 의회민주주의, 분권민주주의의 재도입이다. 그리고 정치적 원칙프로그램으로서의 민주주의 헌법이다. (이를 위해) 정치인, 당원, 사회활동가, 언론인, 시민이 크고 작은 범주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경우에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혁명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호응할 것인지는 과거의 상투적 정치과정에서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의 ‘정치적 권태’ 현상은 새로운 전환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을 정치적 동물로 파악하는 것은 고결한 사회적 자산이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정치적 인간’ 되기 손놓은 탓
민주주의, 유지 아니라 쟁취
바른 선택 위한 토론과 참여
‘정치적 권태’ 전복시킬 씨앗 %%990002%% 이는 헌법파기, 권력기관의 무능, 모든 개혁에 대한 반대를 불러온다. 위기상황을 더욱 격화시켜 공화국의 와해와 권력의 집중화를 가져온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문제가 있을 때,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폭넓은 토론 가능성은 일찍부터 제외된다. 의회에게는 형식적 인가를, 대중에게는 기계적 수용을 요구하는 기술지상주의적인 정부의 중요성이 증가한다. 그러나 (권력의 집중에 의한) 독재정치에서는 안정된 사회개혁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헌정 체제는 더욱) 쉽게 무너진다. (한때 민주주의 정치인의 표상이었던) ‘68세대’는 10-20년 전에는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전에 극단적으로 좌파를 대표했던 사람들은 이제 순응적인 관념과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오직 정권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모든 힘을 소진하는 정치인들이 돼 있다. (이 세대를 통해 더욱 확산된 정치에 대한 권태 때문에) ‘위기’라는 이름의 볼록렌즈에는 ‘정치의 최소화’가 집중적으로 모이게 됐다. 거대한 정치적 계획에 대한 소극적 생각과 행동,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사람의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합의방향,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분위기에 맞추려는 태도 등이 정치성의 성장을 정지시켰다. (따라서) 지도자를 바꿔 새로운 사람을 새로운 정권에 앉혀 놓는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소유하거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설립할 때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지속적인 민주주의 혁명이다. 이를 위한 가장 핵심적 요구는 의회민주주의, 분권민주주의의 재도입이다. 그리고 정치적 원칙프로그램으로서의 민주주의 헌법이다. (이를 위해) 정치인, 당원, 사회활동가, 언론인, 시민이 크고 작은 범주 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할 경우에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혁명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호응할 것인지는 과거의 상투적 정치과정에서 얼마나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의 ‘정치적 권태’ 현상은 새로운 전환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을 정치적 동물로 파악하는 것은 고결한 사회적 자산이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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