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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울지 못하는 동물’ 남자의 감정탐구

등록 2010-03-12 18:18수정 2010-03-12 19:15

〈남자심리지도〉
〈남자심리지도〉








〈남자심리지도〉
비요른 쥐프케 지음·엄양선 옮김/쌤앤파커스·1만4000원

“당신은 왜 이렇게 둔한 거야?”

결혼 8년차에 접어든 내게, 언제부턴가 아내는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예민하고 세심한 성격이라고 생각해온 나는 의아했다. ‘내가 그렇게 둔한가?’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피곤해서 그래…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정도로 말을 맺으려고 하면, 아내는 “어떻게 당신은 자기 감정도 잘 몰라?”라고 말을 보탰다. 처음에는 이렇게 다툼이 시작되곤 했지만, 비로소 나는 간혹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5살짜리 아들을 키우면서 이런 고민은 좀더 깊어졌다.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에 대한 고민은, 때때로 내 어린 시절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남성 전문 심리치료사 비요른 쥐프케가 쓴 <남자심리지도>은, 한편으로 마음을 놓게 하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마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나의 고민이 나만의 고민은 아니었지만, 이를 풀고 해결해나가는 길은 멀고도 험할 터이기 때문이다.

쥐프케는 혼란스러운 현대 남성들의 심리적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무엇보다 ‘소년’의 기억을 들춰낸다. 문제의 핵심은 사회가 남자에게 부여한 ‘남자답게’에 있음을 밝혀내기 위해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일 뿐”이라고 통찰한 것처럼, 쥐프케 역시 “남자도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키워진다”고 설명해낸다.


아들들은 보통 무관심하고 엄격한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내면의 ‘나약한’ 감정을 숨겨야 하게 되고, 슬픔과 실망을 애써 외면하면서 아버지와 똑같이 무관심하고 엄격하게 행동하게 된다. 어린 시절 거부했던 나약한 감정들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다시는 드러내서는 안 될 금기의 대상이 돼버린다. 많은 남자들이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도 무감각하고 엄격하게 되는 원인이다.

알게 모르게,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남자답게’에 묶인 남자들은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불안과 두려움을 숨기고, 성공에 불필요한 감정은 내팽개친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원인 모를 무력감에 빠져들고, 인생에 회의를 느끼며, 급기야 막바지에까지 이르면 타인은 물론 자신에 대해서까지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47살의 피상담자 아르노는, 쥐프케가 유년 시절을 들추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나요?”라고 묻자, 마침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울기 시작한다. “오십이 다 된 지금도 저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

독일보다 더욱더 강하고 엄격하고 완벽한 ‘남자의 자격’을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남편들, 아버지들이 이 책을 접하려 한다면, 조용한 공간과 여유로운 시간을 준비하길 권한다. 지하철이나 사무실에서 읽다가 눈물을 쏟는 일은 아무래도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쥐프케는 남자의 문제에 해법을 줄까? 쥐프케뿐 아니라 모든 상담심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상처를 직시하라”고. 몸의 병은 알아야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스스로 알고 인정하는 것이 이미 치료의 시작이라고.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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