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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창세기의 천지창조는 가치의 창조를 뜻해”

등록 2010-03-19 19:50

〈창세기 이야기 1~3〉
〈창세기 이야기 1~3〉
〈창세기 이야기 1~3〉
김민웅 지음/한길사·각 권 1만4000원

김민웅 교수(성공회대)의 <창세기 이야기>는 낯설다. 단일교회 신도 수가 80만명을 넘고, 건축비 2000억원이 넘는 초호화 교회가 지어지고,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들이 그로테스크하게 밤거리를 수놓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구호가 대낮 도심에 맹렬히 메아리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김 교수의 창세기 해석은 낯설다 못해 기이하다.

창세기는 기독교의 신 야훼가 하늘과 땅을 짓고, 만물과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유대민족의 선조들이 야훼의 거대한 계획 속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번성해왔다는 역사의 기록으로 이어지지 않는가.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양에서 종교의 지배가 끝나고 인간의 이성이 과학을 발견해내면서 창세기는 창조신화와 유대민족사로 독해되어 왔다. 물론 과학의 합리가 맹위를 떨칠수록, 기독교인들은 세속의 해석을 부정하며 더욱더 정통과 배타의 울타리 속으로 숨어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 교수는 창세기의 창조 사건은 “모든 존재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며 “창조설이니 진화설이니 하는 과학적인 설명의 논란을 초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창세기가 적고 있는 천지창조는 “‘존재의 창조’를 넘어서 ‘가치의 창조’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희망의 단초를 끄집어낸다. 창조는 가치의 탄생이며, 이는 곧 우리들의 낙담과 상처와 절망이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의 창세기 풀이는 끝까지 이렇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는 창세기의, 통념에 반하는 시간개념에서는 인생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간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해낸다. 하느님이 사람을 흙먼지로 만든 것은,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릴 흙먼지 같은 존재에서 시작된 생명의 가치와 존엄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1권 ‘생명의 빛’을 관통하는 이런 독해법은,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주류 개신교에 몰입돼 있는 이들에겐 정통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에서,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겐 여전히 유일신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양쪽 모두로부터 배척당할 수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기독교인들은 성서를 구태의연하게 읽어서는 안 된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경우에는 스님들이 쓴 책들을 읽는 열린 마음으로 성서를 접하라고, 달랜다. 실로 기독교의 기복적 가치에만 몰입돼 고리타분한 성서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성 기독교인들이나, 기독교나 성서가 배타적이고 독단적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비기독교인들이나 김 교수의 <창세기 이야기>로부터 적잖은 삶의 지혜와 용기, 희망을 읽어낼 수 있을 듯하다.

제1권과 견주면, 제2권 ‘길 떠나는 사람들’과 제3권 ’넘치는 축복’은 오히려 신앙과 무관하게 좀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아브라함에서 비롯된 4대의 생애를 통해, 소외되고 짓눌리고 버림받은 이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머나먼 남의 민족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도, 똑같은 창조적 희망이 싹트고 자라나 꽃피우리라는 통찰로 이어진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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