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46)
이정록 여섯번째 시집 ‘정말’
풍부한 이야기 ‘능청·해학’ 담겨
가여운것 향한 안쓰러운 연민도
풍부한 이야기 ‘능청·해학’ 담겨
가여운것 향한 안쓰러운 연민도
시집과 소설집의 제목을 정하는 데에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다. 해당 시집이나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한 편의 제목 또는 작품 속 한 구절을 책 전체의 제목으로 삼는 것이다. 표제작이 그것이다. 물론 예외가 없지는 않다. 김연수의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는 가장 잘 알려진 경우다. 이 책에 묶인 아홉 단편에 정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은 없다. 새로 나온 이정록(46)의 여섯 번째 시집 <정말>(창비)을 또 하나의 예외로 추가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수록된 시 예순다섯 편 중에는 ‘정말’이라는 제목을 지닌 작품이 없다. 그럼 시 본문에는? 찾아 보니 시 세 편 속에 모두 네 번에 걸쳐 ‘정말’이라는 낱말이 나온다.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와 <내포석재 애기불>에 한 번씩, 그리고 <참 빨랐지 그 양반>에 두 번.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이 시들에 나오는 네 개의 ‘정말’ 중 어느 하나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시집 제목 ‘정말’은 어디서 온 것이며 무슨 뜻으로 쓰인 것일까? 독자로서는 시집 속에서 희미한 단서나마 찾아 볼밖에 다른 도리는 없을 터이니, 우선 ‘정말’이라는 말이 들어간 시 세 편을 살펴 보자.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는 시인이 금강산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가한 길에 신계사 터에서 주운 기와 조각을 기념품 삼아 숨겨 나오려다 들켜서 북측 세관원과 주고받은 대화를 소개한다. “뉘기보다 조국산천을 사랑해야 할 시인 동무께서 이래도 되는 겁네까?”라며 추궁을 시작한 세관원이 “있던 자리에 고대로 갖다놓아야 되지 않겠습네까?”라고 겁을 주다가 “그럼 그쪽 사정을 백천번 살펴서 우리 측에서 갖다놓겠습네다”라고 한 발 물러서자 그제야 안도한 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말 고맙습니다”였다.
시집 ‘정말’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년이다/ 양쪽 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눈으로 웃는다//(…)// 얼어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 박복한 이년을 합치면/ 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 우리집 큰놈은 이제/ 쓸모도 없는 거시기만 남았다고/ 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 막걸리 거품처럼 웃는다”(<홍어> 부분)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시집 제목 ‘정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정의 말’ ‘정감 있는 말’이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라면, ‘정록이의 말’은 어떨까. 아마도 그런 의미들이 두루 더해져서 ‘거짓이 아닌 진짜의 말’이라는 뜻을 담게 되었을 게다. 정말 정이 가는 시집이다, <정말>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임병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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