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정혜윤 지음/민음사·1만3000원 똑똑! 누군가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새벽 3시다. 마음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약혼자가 있는 여인 로테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베르테르’다. ‘감각의 독서가’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시비에스 라디오> 프로듀서 정혜윤씨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은 독특한 고전 읽기 책이다. <세계가…>에는 지은이가 2008년 10월부터 온라인 서점 예스24 웹진과 민음사 누리집에 연재해온 독서 칼럼 중 가려뽑은 15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겨레>에 ‘정혜윤의 새벽 3시 책읽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의 고전 읽기는 마치 고전 속의 주인공과 나누는 대화 같다. 그의 글에 유난히 슬픔, 기쁨, 분노, 안타까움 등 감정의 묘사가 많은 것도, 지은이가 고전 속 주인공과 이렇게 감정적 교우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얼른 달려나가 가련한 청년 베르테르를 껴안는다. 그 또한 “흠모하는 이의 가벼운 뿌리침 한번만으로도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되는, 너무나 가련하고 나약한 몸뚱이가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관능 그 자체였던, 그런 어린 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베르테르뿐이랴. 그는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마담 보바리>,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984>, <설국>, <주홍글씨> 속의 상처 입은 주인공들에게도 문을 열고 손을 내민다. 이 주인공들과의 만남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15살에 처음 <폭풍의 언덕>을 대했을 때, 그는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히스클리프가 죽기만을 바라면서 책을 읽어나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다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만났을 때, 그는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지 깨닫는다. 아니, 적어도 그 열정에 매혹된다. “지상에 있는 동안 한번만이라도 내가 시작한 일을 끝까지 끌고 가보고 싶기 때문”인데, 이런 변화는 아마도 두 번의 만남 사이에 그 자신이 “격렬하고 쓰라린” 세상살이와 사랑을 겪었던 탓이었으리라. 그가 만나는 주인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다시금 되돌아보라고 조언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통제된 빅브러더의 세계 <1984>에서 과거 기억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윈스턴 스미스와의 만남에서 그는 “사상경찰, 통제, 전쟁, 권위주의, 전체주의” 등 소설 속 세계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 지은이는 오히려 “우리가 이미 그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윈스턴이 어딘가에 끌려가 경험했던 것은 전기고문과 약물 투여, 벌거벗겨짐, 그리고 얼굴을 물어뜯으려는 쥐의 위협인데, 우리는 쥐보다 무서운 개가 위협하는 관타나모 수용소라는 현실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새벽 어스름이다. 마음의 문을 두드렸던 고전 속 주인공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고전 속 주인공은 떠나가더라도, 그와 나누었던 대화는 지은이를 이미 바꾸어 놓았다. 그 깊은 절망과, 그 벅찬 기쁨과, 그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지은이의 가슴속에 계속 울림으로 남아 그를 ‘어제와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출근길 북적이는 사람들은 어제와 같아 보여도, 이미 세상 또한 어제의 그 세상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고전 읽기를 통해 날마다 세상을 두번 살아간다.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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