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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명의 교차로’에 흐르는 ‘화해의 피’

등록 2010-04-23 22:10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1·2〉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1·2〉
터키 여행서이자 인문 역사 탐구서
성서와 다양한 문명의 무대이지만
이들과 구별되는 ‘고유의 특성’ 그려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 1·2〉
유재원 지음/성안당·1권 2만2000원 2권 2만원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그리스 언어·문화 전문가로서 그리스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쓴 바 있다. 그가 이번에는 그리스 옆 나라 터키에 관한 책을 썼다. 두 권으로 된 <터키, 1만년의 시간여행>은 “그리스 다음으로 친숙한 나라”에 대한 일종의 여행 안내서다. 여행 안내서라고는 하지만 내용은 오히려 인문학적 역사 탐구 성격이 짙다. 터키의 주요 유적지를 지리적으로 횡단하는 여행기 형식 안에서 1만년에 이르는 터키 역사를 종단한다. 이 종단 과정에서 역사의 주요 국면들이 깊이 있게 서술된다.

머리말에서 지은이는 터키 지역이 초기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곳이자 그리스인들의 제국이었던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곳에 관심을 품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와 유럽 양쪽에 걸쳐 있는 터키는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이자 동시에 유럽 문화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터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유적이 발견된 곳이다. 기원전 6800~5700년께 ‘차탈회위크’라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세워졌다고 한다. 이후 터키 지역은 청동기 문명, 그리스 문명, 기독교-비잔틴 문명, 이슬람 문명을 각각 거치면서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역사·문화적 퇴적층을 쌓아 올렸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에 있는 영토는 터키 전체 영토의 3%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7%의 땅은 아시아 대륙에 속하는 아나톨리아 지역이다. 아나톨리아란 그리스어로 ‘해 뜨는 곳’, ‘동쪽 땅’이라는 뜻인데, 이 말을 라틴어로 옮기면 오늘날 서양에 대비되어 동양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오리엔트’가 된다. 이 오리엔트, 곧 아나톨리아 지역의 중앙 고원 지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호령했던 나라가 바로 히타이트다. 기원전 1750~1200년 사이 융성했던 히타이트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해 만든 청동 무기를 앞세워 광대한 제국을 세웠다. 히타이트의 라이벌 가운데 하나는 이집트였는데, 두 제국 사이의 전쟁과 화해가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돼 전한다. 기원전 1274년 5월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 2세를 공격했다가 무와탈리 2세의 계략에 빠져 대패하고 몸만 살아 나갔다. 이 싸움 뒤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 바로 ‘카데시 조약’이다. 지은이를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평화조약’이라고 말한다.

카데시 조약이 맺어지던 즈음에 소아시아 다르다넬스 해협 쪽 도시국가 트로이아에서는 호메로스 <일리아스>의 배경이 된 ‘트로이아 전쟁’이 벌어져 도시가 폐허로 변했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8세기 이후에 그리스 본토 사람들이 소아시아 해안 지역에 식민도시를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밀레토스다. 밀레토스는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를 배출한 땅으로 유명하다. 탈레스는 천문학을 연구해 일식을 예측하고 기하학을 활용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쟀다고 한다. “하지만 탈레스가 후대에 남긴 가장 혁명적 공헌은 ‘세상 물질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탈레스는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답했는데, 탈레스의 질문은 “세계를 정신적 관점이 아니라 물질의 관점에서 본 혁명적 질문”이었고 “신화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성적·합리적 사고로 나가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술탄 메메트 2세.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술탄 메메트 2세.

터키 땅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로가 됐고, 이어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며, 다시 서기 1세기에는 기독교의 발상지가 됐다. 사도 바울의 출생지가 바로 터키 남부 타르수스였다. 그의 주요 활동지였던 에페수스, 안티오키아가 다 터키 땅에 있다. 324년에 로마 제국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지금의 이스탄불)을 새 수도로 삼은 거대한 천도를 감행했다. 비잔티움은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불렸다. 1453년 그 비잔틴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은 사람이 오스만 제국의 정복자 술탄 메메트 2세(사진)다. 야심만만한 젊은 군주 메메트 2세는 약관의 나이에 이슬람 세계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떠올랐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유럽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메메드 2세와 같은 정복자보다 터키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 땅이 꽃피운 문화일 것이다. 지은이는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의 지도자 메블라나 루미(1207~1273)의 정신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루미는 평생에 걸쳐 9만행에 이르는 시를 남겼는데, 이 시들에서 신의 사랑 속에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설파했다. 그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그리스도교도도 유대교도도 조로아스터교도도 무슬림도 아니다. (…) 나는 하나의 존재만을 찾았고, 하나의 존재만을 알고, 하나의 존재만을 보고, 하나의 존재만을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종교와 국적은 ‘사랑하는 존재’(신)이다. (…) 사랑은 신의 신비를 보여주는 나침반이다.” 종교·국적의 편협한 틀을 뛰어넘은 루미의 길을 따라 오늘의 터키가 다시 동과 서의 화해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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