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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도주의가 내포한 ‘불편한 진실’

등록 2010-05-14 23:33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
카너 폴리 지음/노시내 옮김·마티·1만5000원

<왜 인도주의는 전쟁으로 치닫는가?>의 지은이 카너 폴리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으로 국제앰네스티와 유엔난민기구 등에서 잔뼈가 굵은 인도주의 기구 현장구호 전문가다. 그는 ‘인도주의’를 무엇이라 정의 내리기에 앞서 질문한다. 이 ‘문제적 인도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분쟁현장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와 국제기구의 풍부한 자료를 통해 그가 전하려는 바는 ‘가려진 진실’이다. 1960년대 비아프라 전쟁부터 이라크 전쟁에 걸친 인도주의의 정치화, 현장의 문화충돌, 구호활동가들이 겪는 인간적 고뇌 등이 갈피마다 생생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유엔난민기구가 민간단체에 ‘구호활동 하청’을 줘왔다는 것, ‘착한 공정무역 단체’ 옥스팸이 코소보 등 여러 분쟁지역 무력 개입을 옹호하고선, 민간 표적 폭격을 규탄하라는 내부 목소리는 외면했다는 것,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쓰나미) 재해 때 난민들이 쓸모없는 ‘구호 의류’를 태워 불을 지필 정도로 물자 낭비와 비효율이 심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특히 지은이는 국제기구들의 공과를 냉정히 기록하는데, 이는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서구 중산층 중심의 인권담론 기획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인류가 행한 수십년의 구호활동 가운데는 60년대 비아프라, 80년대 에티오피아에서처럼 순수하고 이타적인 식량 호송작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평화구축 작업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마비상태에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비슷한 형국이라는 분석이다.

지은이는 분쟁과 재난에 대한 외부 개입을 ‘필요악’으로 진단하고 인도주의 개념의 재정비를 요구한다. 한 지역의 ‘인권’을 이야기할 땐 서로 다른 맥락적 진실, 즉 그 사회의 문화적 다름이나 성별성의 양상까지 고려한 총체적인 이해가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도주의’를 이야기하는 순간, 저마다의 사회·문화적 차이에 기반한 ‘입장적 지식’들이 첨예하게 경합해 현실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이 책이 강조하려는 바다. 지은이가 “인도주의는 해답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286쪽)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 인도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이들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관료화된 국제기구 그 자체라기보다 ‘실제 전쟁터’를 누비는 현장 활동가들이다. 지은이는 ‘인도주의적 수사’를 구사하는 서방세계의 공식적인 전쟁 개입 근거는 회의하되 공동선을 위한 실천은 유효하다고 호소한다.

오늘날 수십억 달러짜리 산업으로 굳어진 인도주의 기구들의 활동은 전지구적 재난의 규모에 걸맞게 성장했다. 기아의 참혹한 이미지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은 구호단체들이 성금 모금을 위해 사실을 단순화해 홍보한다는 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곳에서 더욱 경쟁적으로 활동한다는 점, 돈을 내는 사람들에겐 전쟁터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특정 로고의 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구호 사업은 아름다운 인류애만도 아니고, ‘선행하는 활동가’들을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규정하는 학자들의 선명한 분석 또한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엔 마이클 무어, 나오미 클라인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강대국 음모론’을 받쳐주는 ‘사실’은 없다. 대신 여기엔 현장의 신중한 ‘직언’이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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