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
이태호 지음/생각의 나무·3만원 미술사학자인 지은이 이태호 교수는 2년 전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 초상화를 소개한 바 있다. 옛 화가들은 조선 개국 때부터 ‘터럭 하나까지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라는 신념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의 초상화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 속 인물과 달리 얼굴의 검은 반점과 마마자국, 백반증까지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이런 정교한 붓질로 인물의 삶과 사상까지도 담아내려 했다. 지은이는 ‘우리 얼굴’에 이어 이번엔 옛 그림 속 ‘우리 땅’으로 안내한다. 옛 산수화의 화폭에 우리의 강산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우리 땅을 그리는 방식은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핀다. 시기별, 화가별로 구분된 친절하고 입체적인 분석도 뒤따른다. 옛 그림 속 우리 땅 기행의 출발지는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이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활동했던 겸재에서 기행을 시작하는 ‘심오하고 학문적인’ 이유는 없다. 그 전부터 사실 묘사에 충실했던 초상화와 달리, 산수화는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 땅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성리학적 전통을 중시하고, 중국의 문화와 산하를 동경했던 조선 전기의 분위기’로 설명한다. 명나라가 무너진 뒤 조선의 선비들이 자기 땅의 현실에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을 동경하고 은둔과 풍류를 찬양하는 수묵산수화가 주류였다. 머릿속 관념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구체적인 풍경을 그린 화가가 바로 겸재다. 겸재의 이런 ‘진경’(眞景) 화풍은 이후 김윤겸, 정수영, 김홍도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들뿐 아니라 20세기 이상범이나 변관식, 이응노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진경’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화가들마다 ‘결’의 차이는 분명했다. 겸재는 금강산을 많이 그렸는데, 그는 금강산의 토산과 바위산, 계곡과 사찰 등을 수없이 다녔다. 그리고 다녀온 ‘기억’으로 그렸다. 그래서 그의 <풍악내산총람> 등은 마치 지도를 보듯 자세하지만, “실제와 같지 않다”는 당대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후대의 단원 김홍도는 ‘마치 일정한 격식으로 풍경을 찍은 것 같은’ 금강산 그림을 남겼다고 한다. ‘기억’에 의존한 게 아니라, 현장에 앉아 그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은이는 산수화 외에도 옛 지도 역시 우리 땅을 그린 예술작품으로 소개한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는 지도에 산맥의 흐름을 표시할 때 독특한 회화적 요소를 도입했다. “대동여지도는 국토의 대서사시를 읽는 서정이 느껴지는, 장쾌한 예술작품”이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발품’을 팔아 우리 땅을 직접 보고 그린 화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이 스스로 전국을 누빈 ‘발품’ 또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이 책에는 지은이가 지난 30년 동안 금강산부터 남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산수화에 등장하는 실제 풍경을 답사한 결과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옛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을 법한 위치를 찾아내 사진을 찍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옛 그림 150여점과 나란히 놓았다. ‘이곳을 이렇게 그렸구나.’ 몇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옛 화가들의 시선과 솜씨를 음미하는 재미가 작지 않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이태호 지음/생각의 나무·3만원 미술사학자인 지은이 이태호 교수는 2년 전 <옛 화가들은 우리 얼굴을 어떻게 그렸나>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 초상화를 소개한 바 있다. 옛 화가들은 조선 개국 때부터 ‘터럭 하나까지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라는 신념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의 초상화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 속 인물과 달리 얼굴의 검은 반점과 마마자국, 백반증까지도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이런 정교한 붓질로 인물의 삶과 사상까지도 담아내려 했다. 지은이는 ‘우리 얼굴’에 이어 이번엔 옛 그림 속 ‘우리 땅’으로 안내한다. 옛 산수화의 화폭에 우리의 강산이 어떻게 표현됐는지, 우리 땅을 그리는 방식은 어떻게 변해갔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핀다. 시기별, 화가별로 구분된 친절하고 입체적인 분석도 뒤따른다. 옛 그림 속 우리 땅 기행의 출발지는 ‘진경산수화’의 거장 ‘겸재 정선’이다. 조선 후기인 18세기에 활동했던 겸재에서 기행을 시작하는 ‘심오하고 학문적인’ 이유는 없다. 그 전부터 사실 묘사에 충실했던 초상화와 달리, 산수화는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 땅을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그 이유를 ‘성리학적 전통을 중시하고, 중국의 문화와 산하를 동경했던 조선 전기의 분위기’로 설명한다. 명나라가 무너진 뒤 조선의 선비들이 자기 땅의 현실에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무릉도원과 같은 이상향을 동경하고 은둔과 풍류를 찬양하는 수묵산수화가 주류였다. 머릿속 관념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우리 땅의 구체적인 풍경을 그린 화가가 바로 겸재다. 겸재의 이런 ‘진경’(眞景) 화풍은 이후 김윤겸, 정수영, 김홍도 등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들뿐 아니라 20세기 이상범이나 변관식, 이응노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진경’을 그렸다고 하더라도 화가들마다 ‘결’의 차이는 분명했다. 겸재는 금강산을 많이 그렸는데, 그는 금강산의 토산과 바위산, 계곡과 사찰 등을 수없이 다녔다. 그리고 다녀온 ‘기억’으로 그렸다. 그래서 그의 <풍악내산총람> 등은 마치 지도를 보듯 자세하지만, “실제와 같지 않다”는 당대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후대의 단원 김홍도는 ‘마치 일정한 격식으로 풍경을 찍은 것 같은’ 금강산 그림을 남겼다고 한다. ‘기억’에 의존한 게 아니라, 현장에 앉아 그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은이는 산수화 외에도 옛 지도 역시 우리 땅을 그린 예술작품으로 소개한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는 지도에 산맥의 흐름을 표시할 때 독특한 회화적 요소를 도입했다. “대동여지도는 국토의 대서사시를 읽는 서정이 느껴지는, 장쾌한 예술작품”이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발품’을 팔아 우리 땅을 직접 보고 그린 화가들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이 스스로 전국을 누빈 ‘발품’ 또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이 책에는 지은이가 지난 30년 동안 금강산부터 남도에 이르기까지 조선 후기 산수화에 등장하는 실제 풍경을 답사한 결과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옛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을 법한 위치를 찾아내 사진을 찍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옛 그림 150여점과 나란히 놓았다. ‘이곳을 이렇게 그렸구나.’ 몇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옛 화가들의 시선과 솜씨를 음미하는 재미가 작지 않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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