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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서사시에 담긴 고대 로마의 세시풍속

등록 2010-06-18 17:59

〈로마의 축제들〉
〈로마의 축제들〉
오비디우스의 걸작 중 하나
당대 생활상 생생하게 묘사
〈로마의 축제들〉
오비디우스 지음·천병희 옮김/숲·2만4000원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사진·기원전 43~기원후 18)의 서사시 <로마의 축제들>이 그리스·라틴 문헌 전문 번역가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새롭게 나왔다. <로마의 축제들>은 <변신 이야기>와 함께 오비디우스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오비디우스는 선배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와 자주 비교된다. 두 사람은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수놓은 서사시의 두 대가이자 라틴어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그러나 생전에 두 사람이 직접 교류했던 것 같지는 않다. 스물일곱 살 어린 오비디우스는 당대 최고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먼발치에서 보았을 뿐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생애 말년에 <아이네이스>를 써 로마 건국 신화를 장대한 서사시로 형상화했고,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그리스·로마 신화 속 250가지 변신 사건을 탁월한 문체로 묘사했다. 살아생전에 최고의 서사시인이라는 명성을 얻은 두 사람은 사후에 라틴 문학의 가장 높은 자리를 놓고 다투는 막강한 라이벌이 되었다. 라틴어가 문학 언어였던 중세시대에 오비디우스는 그리스·로마 시대 작가들 가운데 단연 가장 많이 읽히는 사람이었다. 특히 12~13세기는 ‘오비디우스 시대’로 불릴 정도였다. 마찬가지로 베르길리우스는 사후에 신적인 후광을 얻어 예언자·마법사로 불렸고, 시성(詩聖)의 지위에 올랐다. 그는 14세기 단테의 <신곡>에서 단테를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의 문 앞까지 안내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비디우스는 초기에 연애시로 인기를 얻었다. 어떻게 하면 이성의 호감을 살 수 있는지 속삭여주는 <사랑의 기술>, 실연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랑의 치료약> 같은 작품은 그에게 커다란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런 명성을 발판으로 삼아 그는 시인으로서 승부를 거는 작품 창작에 들어가는데, 기원후 2년께부터 <변신 이야기>와 <로마의 축제들>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원후 8년께 아우구스투스의 명으로 난데없이 로마에서 쫓겨나 흑해 서안 오지로 유배를 당하고 말았다. 근대의 감각으로 말하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진 것이다. 이 일로 그는 <로마의 축제들> 집필을 중간에 접어야 했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가필과 수정을 계속했지만 끝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오비디우스는 유배지에서 10년을 보내다 거기서 삶을 마감했는데, 그 시절의 비참하고 쓰라린 마음을 거기서 쓴 <비탄의 노래> <흑해에서 보낸 편지>에 절절하게 담아 표현했다.


서사시에 담긴 고대 로마의 세시풍속
서사시에 담긴 고대 로마의 세시풍속
<로마의 축제들>은 로마 시대의 축제들을 월별로 묶어 설명해주는 서사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세시풍속 안내서인 셈인데, 여기서 오비디우스는 로마 축제들의 기원과 관습을 설명해주고 별자리에 얽힌 신화를 들려주고 로마 역사상의 흥미로운 일화들을 전해준다. 미완성인 탓에 이야기는 1월 초하루에 시작해 6월30일로 끝난다. 조탁된 언어와 함축적 표현으로 무장한 오비디우스의 시는 신선함과 현실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신들의 이야기를 전할 때조차 상상력 풍부한 회화적인 묘사력 덕에 당대 로마 사회의 생활인들을 옆에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마의 축제들>에서도 이런 묘사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오비디우스는 자신을 여러 모습으로 제시하는데, 때로는 시인의 자격으로 나서는가 하면, 때로는 당대 문화 연구자로 자처하기도 한다. <로마의 축제들>은 그런 연구자의 실증적 자세가 빛나는 작품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알려주는 귀중한 문헌이 됐다. 오비디우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략으로 인터뷰 형식을 쓰기도 한다. 모르는 것을 신에게 묻고 신의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시를 쓰는 것이다. 그런 전략을 잘 보여주는 것이 1월의 축제를 설명하는 첫 부분이다.

1월은 라틴어로 ‘야누아리우스’(Ianuarius, 영어로 January)라고 하는데, 두 얼굴을 지닌 전쟁과 평화의 신 야누스(Ianus)에서 유래했다. 야누스의 달이 1월인 셈이다. 시인은 야누스가 대문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왜 그대는 평화로울 때는 닫혀 있고 전시에는 열려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야누스는 이렇게 답한다. “내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전쟁터에 나간 백성이 귀향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지요. 평화로울 때 닫혀 있는 것은 평화가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이 시는 당시 로마 사람들이 1월 첫날 서로 덕담을 하고 돈을 선물하기도 했음을 알려준다. 시인이 돈을 선물하는 까닭을 묻자 야누스가 답하는데, 그 내용이 몹시 풍자적이다. “만약 그대가 손에 들어온 돈보다 꿀을 더 달콤하다고 여긴다면 그대는 그대의 세기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오. … 사람들은 가장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추구했지요. … 그들은 물을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는, 수종증으로 배가 부어오른 사람들과 같았소. 지금은 돈이 제일이오. 재력이 관직도 가져다주고 재력이 우정도 가져다주며 가난한 자는 어디서나 유린당하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 사는 모습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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