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80년대 대학 노래패의 풍경에
엇갈리는 사랑과 시대의 고민
글자로 흐르는 민중가요 ‘철철’
엇갈리는 사랑과 시대의 고민
글자로 흐르는 민중가요 ‘철철’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조용호 지음/문이당·1만1000원 조용호(49·사진)의 첫 장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는 노래의, 노래에 의한, 노래를 위한 소설이다. 책 제목부터가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아타우알파 유팡키의 노래 제목에서 왔다. 이 노래 말고도 누에바 칸시온의 또다른 주역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생에 감사드리며>(Gracias a la vida), 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선언>, 아르헨티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마리아가 간다>를 비롯해 우리의 1980년대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와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전통가요 <타향살이> <애수의 소야곡>, 그리고 <오동동 타령>과 <진도 아리랑> 같은 민요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노래들이 소설 전편에 울려 퍼진다. 80년대 대학 시절 민요패 동료였던 노래꾼 연우가 ‘나’에게 비망록을 남긴 채 사라진다. ‘나’는 민요패 후배이자 연우의 아내인 승미와 함께 비망록을 근거로 연우의 흔적을 좇는다. 연우의 고향인 남쪽 소읍에서부터 성남 모란시장, 강화, 그리고 남미 칠레의 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까지. 그 과정에서 역시 민요패에서 잠깐 함께 활동했던 수수께끼의 여인 선화가 연우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두 사람이 연우의 실종 이유와 행방을 추적하는 현재, 그리고 연우와 선화 사이의 운명적 사랑과 엇갈림의 역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가슴 시린 노래 소설 한 편을 직조해 낸다.
소설은 연우의 비망록과, 그 비망록을 안내자 삼아 연우의 행적을 좇는 ‘나’와 승미의 동선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짜였다. 프롤로그 격인 첫 장에서 ‘나’는 연우로 짐작되는 사내가 눈 쌓인 계곡 바위 위에서 김지하의 시로 만든 노래 <빈 산>을 부르다가 추락하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생에 감사드리며>를 언급하며 그에게 맡겨 온 연우의 비망록을 떠오르게 하고, 이어서 ‘나’와 연우와 승미가 처음 만났던 대학 시절로 독자를 데려간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학생회관 무대에서 느린 기타 반주에 맞추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오월의 노래>를 부르던 승미의 모습이 ‘나’에게는 “온몸의 신경을 저릿하게 마비시키는 듯했다.” 문제는 공연 뒤풀이에 ‘나’와 함께 참석해 <빈 산>을 부른 연우에게 승미가 반했다는 사실이다. 학내 노래패의 프리마 돈나와 프리모 우오모(주역 남자 가수)였던 승미와 연우는 곧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나’는 승미에 대한 연정을 애써 눌러 감춘 채 그들 곁을 맴돈다. 그러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승미를 가운데 둔 ‘나’와 연우 사이의 삼각관계는 아니다. 세 사람의 노래패에 뒤늦게 들어온 해금 전공 국악과 신입생 선화에게 연우가 빠져들면서 사태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결혼에까지 이른 연우와 승미의 사랑이 이성에 입각한 낮의 사랑이라면, 연우와 선화의 불안하고 충동적인 사랑은 정념에 충실한 밤의 사랑으로서 그와 대비된다. 여기에다가 나중에야 밝혀지는 연우 아비와 선화 어미의 비련의 과거가 포개지면서 극적 긴장감은 한층 배가된다. 달아난 선화를 연우가 따르고 그 연우를 ‘나’와 승미가 쫓으면서 무대는 머나먼 칠레로 옮겨 가고, 그곳 바닷가에서 선화와 연우는 달랑 해금만을 남겨 놓은 채 끝내 종적을 감춘다. 소설은 그들이 함께 바다로 몸을 던졌을 가능성과,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견디고 있을 가능성을 두루 열어놓는다. 소설에는 그 자신 80년대에 연행패 민요연구회에서 노래꾼으로 활동했던 작가의 경험이 진하게 녹아 있다. 대학 노래패의 공연과 그에 이어지는 시위와 뒤풀이, 예술과 운동 사이에서 겪는 갈등,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둘러싼 고민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노래의 힘으로 고통스러웠던 연대를 헤쳐 나올 수 있었”다는 작가가 ‘노래에 감사드리며’ 오마주처럼 쓴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해선 사진작가
조용호 지음/문이당·1만1000원 조용호(49·사진)의 첫 장편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는 노래의, 노래에 의한, 노래를 위한 소설이다. 책 제목부터가 라틴아메리카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아타우알파 유팡키의 노래 제목에서 왔다. 이 노래 말고도 누에바 칸시온의 또다른 주역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생에 감사드리며>(Gracias a la vida), 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선언>, 아르헨티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마리아가 간다>를 비롯해 우리의 1980년대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와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전통가요 <타향살이> <애수의 소야곡>, 그리고 <오동동 타령>과 <진도 아리랑> 같은 민요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의 노래들이 소설 전편에 울려 퍼진다. 80년대 대학 시절 민요패 동료였던 노래꾼 연우가 ‘나’에게 비망록을 남긴 채 사라진다. ‘나’는 민요패 후배이자 연우의 아내인 승미와 함께 비망록을 근거로 연우의 흔적을 좇는다. 연우의 고향인 남쪽 소읍에서부터 성남 모란시장, 강화, 그리고 남미 칠레의 산티아고와 발파라이소까지. 그 과정에서 역시 민요패에서 잠깐 함께 활동했던 수수께끼의 여인 선화가 연우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두 사람이 연우의 실종 이유와 행방을 추적하는 현재, 그리고 연우와 선화 사이의 운명적 사랑과 엇갈림의 역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가슴 시린 노래 소설 한 편을 직조해 낸다.
조용호(49)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 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 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 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학생회관 무대에서 느린 기타 반주에 맞추어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오월의 노래>를 부르던 승미의 모습이 ‘나’에게는 “온몸의 신경을 저릿하게 마비시키는 듯했다.” 문제는 공연 뒤풀이에 ‘나’와 함께 참석해 <빈 산>을 부른 연우에게 승미가 반했다는 사실이다. 학내 노래패의 프리마 돈나와 프리모 우오모(주역 남자 가수)였던 승미와 연우는 곧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나’는 승미에 대한 연정을 애써 눌러 감춘 채 그들 곁을 맴돈다. 그러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승미를 가운데 둔 ‘나’와 연우 사이의 삼각관계는 아니다. 세 사람의 노래패에 뒤늦게 들어온 해금 전공 국악과 신입생 선화에게 연우가 빠져들면서 사태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결혼에까지 이른 연우와 승미의 사랑이 이성에 입각한 낮의 사랑이라면, 연우와 선화의 불안하고 충동적인 사랑은 정념에 충실한 밤의 사랑으로서 그와 대비된다. 여기에다가 나중에야 밝혀지는 연우 아비와 선화 어미의 비련의 과거가 포개지면서 극적 긴장감은 한층 배가된다. 달아난 선화를 연우가 따르고 그 연우를 ‘나’와 승미가 쫓으면서 무대는 머나먼 칠레로 옮겨 가고, 그곳 바닷가에서 선화와 연우는 달랑 해금만을 남겨 놓은 채 끝내 종적을 감춘다. 소설은 그들이 함께 바다로 몸을 던졌을 가능성과, 죽지 않고 살아남아 낯선 시간과 공간을 견디고 있을 가능성을 두루 열어놓는다. 소설에는 그 자신 80년대에 연행패 민요연구회에서 노래꾼으로 활동했던 작가의 경험이 진하게 녹아 있다. 대학 노래패의 공연과 그에 이어지는 시위와 뒤풀이, 예술과 운동 사이에서 겪는 갈등,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둘러싼 고민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노래의 힘으로 고통스러웠던 연대를 헤쳐 나올 수 있었”다는 작가가 ‘노래에 감사드리며’ 오마주처럼 쓴 소설이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해선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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