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
잠깐독서 /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
‘차이의 정치학’은 198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 그룹 내부에서 발생한 논쟁이었다. 이를테면 흑인 여성 노동자가 있을 때,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첫번째 요소는 피부색일까, 성별일까, 계급일까. 이는 각자의 인종, 계급, 성별성, 지역, 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문 이었다. 벨 훅스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이 남성과 같은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 페미니즘을 성별 억압으로 단일화함에 따라 나머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말한다. 여성 억압의 원인이 젠더(성별성)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피부색과 인종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정(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직장(공적 영역)으로’라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구호는 가사와 돈벌이를 함께 해온 하층계급 흑인 여성들의 삶을 무화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직장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남성 억압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페미니즘-주변에서 중심으로>는 1980년대 ‘차이의 정치학’을 펼친 훅스의 초기작이다. 따라서 자비·사랑·공동체적 가치를 높이 사는 지금의 훅스나 ‘차이’를 인정하며 전지구적 연대를 구상하는 지금의 페미니즘 쟁점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미국 상황에 대한 맥락적 이해 없이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했을 땐 페미니즘에 반격을 시도하는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이 이론이 전유될 우려가 있다. 중요한 건 훅스가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의 경합을 통해 더욱 정체화된 페미니즘 이론을 구상하려고 이 책을 썼다는 점이다. 윤은진 옮김/모티브북·1만5000원.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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