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잠깐독서
〈동화처럼〉
지하철에서 매력적인 이성과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저 사람은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 입은 내 옷이 후져 보이진 않을까….
김경욱 작가의 신작 <동화처럼>은 서로 알 수 없는 남녀 간의 생각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거리를 덮었던 1980년대 후반, 대학 노래패에서 만난 백장미·김명제 두 남녀의 시각을 번갈아 가며 엮어낸다. 남이섬 엠티장소에서 술에 만취해 잠든 백장미는 작업대상(?)이었던 치대생 서정우가 자신의 손을 잡았다며 흥분한다. 남자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야기에선 김명제는 불 꺼진 방 안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짝사랑 대상인 한서영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눈을 떠보니 옆에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백장미. 이렇듯 엇갈린 남녀의 시선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결국 두 주인공은 졸업 뒤 우연한 만남을 통해 결혼에 골인하지만 사랑 이야기가 늘 그러하듯 오해와 이해가 되풀이되며 좌충우돌한다. ‘동화처럼’ 알콩달콩한 연애담은 후반부로 갈수록 ‘부부클리닉’에 나올 법한 치열한 부부 갈등으로 뒤바뀐다. 남편이 벗어 젖힌 ‘공’ 같은 양말과 시아버지 밥상을 위한 세끼 ‘국거리’ 스트레스, 외도(또는 의심)는 부부에게 두 번의 이혼을 선택하게 만든다. 뜻밖에도 소설 말미 두 남녀의 극적 화해를 매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부모님’이다. ‘발랄한 주체성’이 아쉬운 대목이다. 책 홍보문구인 ‘연애 테라피’를 믿고 보다간 오히려 ‘연애 포비아’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김경욱 지음/민음사·1만1000원.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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