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를 죽이려고
소설 제목으로 사용된 ‘마초’는 작가의 말을 빌리면 “껍질만 남은 채 버둥거리고 있는 괴물”이면서도, 이 소설 속에서는 ‘선생 혹은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사업 실패 뒤 가족들에게 횡포만 부리다 자살한 아버지를 둔 주인공 ‘지헌’이 “이 아수라 같은 세상에서 한 가닥 길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일념”으로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간 이는 팔순의 동양화가 최홍명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집 ‘비서’로 일하게 된 지헌은 스승의 옆을 지키면서, 때론 나약하고 고집스럽지만 예술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가치와 본질에 접근해 간다.
제대로 된 스승 없는 시대 탓인지, 주인공 지헌뿐 아니라 최홍명의 부인(혜수)이나 스승의 어린 애인 서채리, 그리고 지헌의 어머니조차도 스승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한다. 스승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가족간의 아귀다툼이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텅 빈 지하실(전 부인은 못 가본 곳이다)을 차지하는 서채리의 사랑법도 이 소설의 또다른 축이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스승이자 선배이며, 애인이고, 아버지 같은, 그렇지만 결국 껍데기만 남은 괴물일지 모르는 최홍명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원로작가는 3년 만에 소설을 내면서 조금은 생소한 ‘스승’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다. 왜일까. “사물의 이름이 언제부터 그 본래 의미와 기능을 잃기 시작한 것인지 아득하다. 부모와 자식, 친구와 연인, 스승과 제자, 이런 용어의 상대적 의미망이 와해되어 버린 세상이 두려워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이제하 지음/뿔·1만2000원.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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