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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등록 2010-10-15 20:05

윤성희(37)
윤성희(37)
윤성희의 밀도 높은 첫 장편
여덟식구 ‘서사’가 쫀득쫀득
인간과 삶에 대한 사랑 선물
〈구경꾼들〉
윤성희 지음/문학동네·1만원

1999년 등단 이후 단편집만 세 권을 펴냈던 윤성희(37)가 드디어 첫 장편 <구경꾼들>을 내놓았다. 단편이 장편 집필을 위한 훈련이 되기도 하지만 빼어난 단편 작가가 자동적으로 훌륭한 장편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서, 그의 첫 장편소설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구경꾼들>은 윤성희의 작가적 행보를 지켜봐 온 ‘구경꾼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한 역작이다. 단편의 쫀득쫀득한 밀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300쪽 남짓 이어지는 소설은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 한가득 뿌듯한 무언가가 벅차 오른다. 책을 읽고 나서 인간과 삶과 세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고 그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란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구경꾼들>이 바로 그런 소설이다.

서술자 ‘나’의 목소리로 소설은 진행되는데, ‘나’는 아홉 식구로 이루어진 대가족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은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사람과 사물의 생각을 대변하는 일종의 전지적 작가로도 구실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큰삼촌과 작은삼촌, 그리고 고모와 외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 빛을 처음 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적어도 심심하진 않을 것 같아.’

식당을 운영하면서 따로 사는 외할머니를 제한 나머지 여덟 가족의, 심심하지 않은 이야기는 마당이 있는 이층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식구들이 이층집으로 이사하는 과정을 그린 대목은 이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작가는 이층집의 첫 주인이었던 버스회사 사장 사위와 세입자인 독거 할머니, 두 번째 주인인 시골 과수원 출신 부부, 그리고 세 번째 주인인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늘어놓는다. 소설 주인공이라 할 ‘나’의 식구들과는 무관한 이들이 이 장면에서만은 남부럽지 않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렇듯 소설은 핵심적인 이야기들이 곁가지 이야기들을 끌어들이고 그 곁가지가 다시 또 다른 이야기를 데려오는 식으로 끊임없이 새끼를 치는 이야기들의 연쇄를 펼쳐 보인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 견줄 만한 강력한 이야기 본능이 <구경꾼들>을 지배한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큰삼촌과 할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이 차례로 죽는 일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안긴다. 큰삼촌이 어이없는 사고로 죽은 뒤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밤새 이야기를 나눈다. 큰삼촌의 늦은 걸음마에 대해, 엄마의 늦은 젖떼기에 대해. 전화를 끊으면서 외할머니는 말한다.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외할머니의 말은 기억하기와 이야기가 죽음과 상실에 맞서는 유력한, 아마도 거의 유일한 방편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다. 문학이 종교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 어름이거니와, <구경꾼들> 속에서 이야기에의 욕구는 가히 용암처럼 들끓는다.

“아이스박스에 갇혔다 나온 후로 아버지는 사물을 보면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아무 엽서나 네 개씩 집어서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네 장의 엽서를 연결하다보면 수십 가지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외할머니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모두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누구에게나,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에게도 나름의 이야기는 있다는 것. <구경꾼들>의 주제를 이렇게 요약할 법하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마냥 ‘구경꾼’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각자의 삶의 엄연한 주인공이라는 것.


큰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해외여행에 나섰던 부모님은 자신들이 겪은 것과 비슷한 일들을 세계 도처에서 보고 듣는다. 그 몇 년 뒤 이번에는 국내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런 이야기는 먼 곳에만 있지는 않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구경’하고자 다니던 여행길에서 그들은 결국 세상을 뜨고 마는데, 그 이전에 ‘나’는 구경꾼 부모님을 그 자신이 또 다른 구경꾼이 되어 지켜보겠노라는 각오를 스스로 다진다. 책 제목과도 연결되는 이 대목에 이 소설의 핵심적인 태도가 들어 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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