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학자의 통찰이 담긴 역저
열두가지 정치이념 종횡 분석
다원의 공간 ‘거대한 대화’ 제안
열두가지 정치이념 종횡 분석
다원의 공간 ‘거대한 대화’ 제안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폴 슈메이커 지음·조효제 옮김/후마니타스·3만5000원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가? 말 되는 보수와 말 안 되는 보수는 어디에서 갈리는가? 합리적 좌파와 극단적 좌파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치학자 폴 슈메이커(미국 캔자스대학 교수)의 저작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다원적 공공 정치를 위한 철학>은 정치 현실에서 번번이 논란에 휩싸이고 혼란에 혼란을 더하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는 책이다. 옮긴이 조효제 교수(베를린자유대)의 표현을 따르면, 이 책은 “생각 깊은 원로 정치학자가 평생에 걸쳐 연찬해 도달한 통찰이 담긴 역저”다. 정치 이념의 스펙트럼을 극좌에서 극우까지 일일이 나열해 그 이념들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 뒤 서로 소통할 수 있고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토대 위에 놓인 이념이 스펙트럼상 어디까지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제목에 드러난 대로 이 책이 정치이념의 스펙트럼에 포함시킨 이념은 모두 열두 가지다. 전통적 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파시즘과 나치즘, 현대 자유주의, 현대 보수주의, 급진적 우파, 극단적 우파, 급진적 좌파, 극단적 좌파가 이 스펙트럼을 채우는 이념들이다. 예를 들어, 시장지상주의(자유지상주의)가 급진적 우파에 해당한다면, 극단적 우파로는 기독교근본주의, 이슬람근본주의가 있다. 또 이 책의 분류상 민주사회주의는 급진적 좌파에 속하며, 안토니오 네그리의 자율주의는 일종의 극단적 좌파로 묶인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아주 새로운 분석방법을 통해 정치이념들의 특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각각의 정치이념들은 모두 ‘철학적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고 그 바탕 위에서 ‘정치적 원리’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 바탕과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적 가정으로 존재론, 인간론, 사회론, 인식론이라는 네 가지 차원을 구분하고, 정치적 원리로 정치공동체, 시민권, 사회구조, 권력의 보유자, 정부의 권위, 정의, 변화라는 일곱 가지 차원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모두 열한 가지 차원으로 이 열두 가지 정치이념을 분석함으로써 결국 132 항목에 걸쳐 정치이념들을 가로지른다. 이런 분석방법에 대해 옮긴이는 “정치이념을 다룬 기존의 어떤 저술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획기적인 분석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종횡으로 분석함으로써 정치이념들의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특히 각 이념의 역사적 변화·발전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같은 자유주의라 해도 고전 자유주의와 현대 자유주의 사이에 단절에 가까운 변화가 있고, 전통 보수주의와 현대 보수주의 사이에도 질적인 변화가 있음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전통 보수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현대 보수주의는 자본주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또 고전적 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핵심으로 내세웠지만, 오늘날의 자유주의는 강한 정부를 옹호한다. “고전적 자유주의 시조 중의 한 사람인 로크가 현대 자유주의를 목격한다면 지나치게 큰 변화상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념의 스펙트럼을 명확하게 나눔으로써 이 책이 결정적으로 이야기하려는 바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이란 “각자의 이념적 입장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모든 정치 이념들의 저변을 이루는 합의를 모색하는 일종의 메타 정치이론”이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이념을 분명히 제시하되 다른 정치이념과도 합의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이 책이 말하는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이다. 지은이는 역사상 결격으로 판정이 난 전체주의 이념과 일부 극단주의 이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정치 이념들이 이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의 지붕 아래 모일 수 있다고 본다. 이 공통 공간에서 정치의 영원한 쟁점을 놓고 일종의 ‘거대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 공통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이념으로 급진적 우파에서 급진적 좌파까지를 포괄한다. 말하자면 이들이 서로 말이 통하는 ‘합리적 좌·우파’인 셈이다.
지은이의 다원주의적 포용은 여기까지다. 지은이는 이 공통의 다원적 공간에 들어올 수 없는 극단적 좌·우파를 단호하게 배제해, 이들을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으로 규정한다. 파시즘·공산주의·종교근본주의 같은 극단적 좌·우파는 민주주의적 공통공간을 거부하거나 이 공간을 훼손하기 때문에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절대주의·극단주의·경직성·냉소주의·허무주의를 특징으로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무원칙한 자기이익 중심주의’도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이다. 그렇다면 흔히 보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정치세력의 상당수가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비정상·탈법·불법을 용인하는 것, 원칙도 철학도 없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태도는 정상적 보수가 아니라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일 뿐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권력만 추구하기 위해 선전·선동을 불사하는 이데올로그들을 배격하는 것도 민주적 책임에 속한다”고 말한다. 다원적 공공정치를 구현하려면 그 정치의 적들과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지은이의 다원주의적 포용은 여기까지다. 지은이는 이 공통의 다원적 공간에 들어올 수 없는 극단적 좌·우파를 단호하게 배제해, 이들을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으로 규정한다. 파시즘·공산주의·종교근본주의 같은 극단적 좌·우파는 민주주의적 공통공간을 거부하거나 이 공간을 훼손하기 때문에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이다. 이들은 교조주의·절대주의·극단주의·경직성·냉소주의·허무주의를 특징으로 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무원칙한 자기이익 중심주의’도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이다. 그렇다면 흔히 보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정치세력의 상당수가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비정상·탈법·불법을 용인하는 것, 원칙도 철학도 없이 기득권을 옹호하는 태도는 정상적 보수가 아니라 다원적 공공정치의 적일 뿐이다.” 지은이는 “자신의 권력만 추구하기 위해 선전·선동을 불사하는 이데올로그들을 배격하는 것도 민주적 책임에 속한다”고 말한다. 다원적 공공정치를 구현하려면 그 정치의 적들과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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