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위의 과학.’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학회 학술대회에서, 김동광 박사(과학사회학)는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이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기존 생명가치에 도전하는 새로운 난치병 치료술로서 줄기세포 과학이 실험실에서 나와 현실사회의 무대 위에 올라 ‘과학의 사회화’를 이뤄가는 과정에 대한 은유다. 그는 “일찍부터 줄기세포 생명윤리에 관심을 기울여온 과학선진국들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그 논쟁의 무대는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며 “줄기세포 논쟁이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은 물론 갖가지 쟁점과 사회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드러낸다”고 바라봤다. 한국 과학자가 앞서 일구고 있는 배아 줄기세포 과학과 그 논쟁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애국적 과학’ 집단적 열광
‘황우석’은 우리 사회에서 독특한 사회현상의 키워드다. “황우석 현상은 사회학의 연구대상”이라는 말이 과학사회학자들 사이에 자주 나온다. 그는 과학자도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열광하는 팬을 몰고 다니는 국내 최초의 대중적 스타 과학자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그를 꼽을 만큼 그는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세계 인물이다. 심지어 증시에서도 ‘황우석 효과’라는 신조어가 떠돈다.
이와 관련해 김동광 박사는 “애국적 과학, 토종 연구자, 국보급 과학자 등 이미지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황우석 교수팀을 ‘국가’와 동일시하게 하면서 신비화를 한층 강화하는 구실을 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런 효과는 인터넷에서 ‘열광’ 분위기로 이어졌다. 지난 17일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선 ‘생명공학과 한국사회’ 주제의 분과토론이 열렸다. 여기에서 ‘생명과학의 대중 이해와 인터넷 공론’이란 논문을 발표한 서이종 서울대 교수(과학사회학)는 ‘열광’의 원인과 관련해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정부 차원에선 국가경쟁력을 고양하고, 시장 차원에선 차세대 성장산업의 우위를 점하는 연구이며, 특히 시민사회 측면에선 난치병 환자의 치료라는 도덕적 우위성을 갖는 다면적 정당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중적 열광 속에 차분한 과학논쟁은 위협받았다. 서 교수가 황 교수의 연구성과 소식이 전해진 5월20일 이후 사흘 동안 인터넷 네이버의 게시판을 분석해보니, 60~70%에 이른 줄기세포 연구 지지자들은 ‘생명윤리보다 난치병 환자를 살리는 일이 중요하다’ ‘과학은 진보하며 국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견해를 주로 내세웠다. 연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글에는 공격성 반박이 쏟아졌다. “(국가·경제 발전을) 발목 잡는” “찬물을 끼얹는” 등 표현의 댓글이 쏟아졌다. 서 교수는 “글에서 과학지식의 이해수준이 낮을수록 더욱 열광하는 성향을 띠었다”며 “애국주의, 과학주의는 대중이 황 교수의 연구성과를 이해하는 중요한 측면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연구성과 견줘 논의수준 너무 뒤져”
진보정당이 비판적 태도 보이고
보수정당은 지지하고 나서
사회반응 다소 혼란스럽기도
풍성한 과학토론 ‘새 무대’열까 순수 과학-생명윤리 논쟁 되풀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반응은 특별한 것이었다. 김동광 박사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의미를 한꺼번에 낳는 ‘접합점’ 구실을 한다고 분석한다. 다양한 집단과 계층한테 줄기세포는 저마다 ‘특별한’ 의미였다. 예컨대 언론에는 특종 뉴스의 공급원으로, 정부와 정치권에는 정치적 지지도 상승의 호재로, 과학계에는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로, 재계에는 새로운 경제활력을 얻을 기회로 여겨졌다. 또 난치병 환자들한테는 질병과 장애 극복의 유일한 희망으로, 일반시민에게는 힘든 정치·경제의 현실에서 민족적 긍지와 희망을 얻을 소재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황우석 교수와 배아 연구는 ‘이곳을 통과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접합점이 됐으며, 스타 과학자의 신비화 현상은 연구자들이 앞으로 이룰 것으로 생각되는 ‘예상’과 ‘추측’을 확고한 ‘사실’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논쟁과정을 분석해 발표한 미국 렌슬러공대 박사과정 김은성(과학기술학)씨는 현재 줄기세포 논쟁이 지나치게 ‘순수 논쟁’에 머물고 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배아는 과연 생명개체인가 세포덩어리인가를 둘러싼 ‘순수 생명윤리’만이 되풀이되면서 논쟁은 발생학의 과학적 ‘사실 논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극단의 순수에서 벗어난 사회적 관심의 전환을 제안했다. “배아 연구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순수 과학 및 순수 윤리를 믿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비평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며 “배아의 도덕적 지위가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이슈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좀더 넓은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배아 줄기세포든, 성체 줄기세포 연구든, 현실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 분배 정의의 문제는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보수 내부논쟁 촉발? 배아 줄기세포 논쟁은 새로운 생명가치의 화두를 던지면서 과학과 생명윤리 외에 현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이념의 분열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예방치의학의 공중보건정책으로 추진되던 ‘수돗물 불소화’의 찬반논쟁이 시민·진보단체들 사이에 이념적 분열을 일으켰던 것이 그 본보기 사례다. 서이종 교수는 저서 <과학사회논쟁과 한국사회>(2005)에서 1998년 이래 국내에서 불소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부와 시민단체, 보건의료단체와 환경단체 사이 논쟁을 집중 분석했다. 그는 수돗물 불소화 논쟁을, 산업사회의 치아 건강을 위한 예방치의학이라는 ‘사회의 과학화’, 그리고 불소화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라는 ‘과학의 사회화’ 요구가 대립해 충돌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당시 논쟁은 보건의료 시민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중심으로 한 불소화 지지와, 녹색평론사를 중심으로 한 불소화의 위험성 경고가 대립하면서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진보단체들의 분열로 확산했다. 좀더 심각한 이념의 논란을 줄기세포가 촉발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내다봤다. “배아를 난치병 환자 치료를 위해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는 일종의 근대주의적 태도”라고 규정하는 그는 “그런데 근대적 사회주의에 가까운 진보정당이 배아 연구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미국 부시 정부와 맥을 함께할 만한 국내 보수정당이 배아 연구를 지지하는 것은 정통 진보와 정통 보수의 이념에서 보자면 다소 정리되지 못한 이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줄기세포 논쟁은 진보와 보수 진영에 내부 논쟁을 자극해, 수돗물 불소화 논쟁이 그랬던 것처럼 정통과 수정의 진보 이념, 정통과 수정의 보수 이념들 사이에 차이를 좀더 드러내게 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숙한 과학논쟁’ 눈을 높이자 <한겨레> 책·지성섹션 ‘18.0도’는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황상익 생명윤리학회장, 조무제 경상대 총장, 이동익 신부 등 생명과학자와 종교·윤리학계 인사 4명한테 평행선의 갈등을 되풀이하는 배아 줄기세포 논쟁과 관련해 성숙한 토론의 조건을 물었다. 이들은 모두 ‘논쟁 상대의 존중’을 꼽았다. 또 ‘정확한 정보와 지식에 근거한 논쟁’을 주문했다. 최근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생명윤리학자는 “생명윤리가 배아 연구를 반드시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다양한 시각들이 있는데도 생명윤리를 ‘과학 진보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매도하는 사회분위기를 지켜볼 때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생명윤리학회는 최근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이 “상보적 관계이며 우군의 관계”일 수 있음을 강조하며 줄기세포 연구자들한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황우석 교수팀도 최근 ‘열린 자세’를 거듭 밝히고 있다. 지난 15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종교·시민단체 인사의 줄기세포 연구 참여 가능성’을 밝힌 데 이어 생명윤리학회가 공개토론 제안에 대해 대화의 자리를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는 “세계 수준의 줄기세포 연구성과에 비춰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나 논의 수준은 너무도 뒤진 상태”라며 과학의 수준에 걸맞게 열린 토론과 논쟁이 진지하게 벌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윤리 뿐 아니라 줄기세포 과학의 분배 정의 문제나 여성의 난자 보호대책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연구성과 견줘 논의수준 너무 뒤져”
진보정당이 비판적 태도 보이고
보수정당은 지지하고 나서
사회반응 다소 혼란스럽기도
풍성한 과학토론 ‘새 무대’열까 순수 과학-생명윤리 논쟁 되풀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반응은 특별한 것이었다. 김동광 박사는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의미를 한꺼번에 낳는 ‘접합점’ 구실을 한다고 분석한다. 다양한 집단과 계층한테 줄기세포는 저마다 ‘특별한’ 의미였다. 예컨대 언론에는 특종 뉴스의 공급원으로, 정부와 정치권에는 정치적 지지도 상승의 호재로, 과학계에는 이공계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로, 재계에는 새로운 경제활력을 얻을 기회로 여겨졌다. 또 난치병 환자들한테는 질병과 장애 극복의 유일한 희망으로, 일반시민에게는 힘든 정치·경제의 현실에서 민족적 긍지와 희망을 얻을 소재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황우석 교수와 배아 연구는 ‘이곳을 통과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접합점이 됐으며, 스타 과학자의 신비화 현상은 연구자들이 앞으로 이룰 것으로 생각되는 ‘예상’과 ‘추측’을 확고한 ‘사실’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한국사회학회 학술대회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줄기세포 논쟁과정을 분석해 발표한 미국 렌슬러공대 박사과정 김은성(과학기술학)씨는 현재 줄기세포 논쟁이 지나치게 ‘순수 논쟁’에 머물고 있는 한계를 지적했다. 배아는 과연 생명개체인가 세포덩어리인가를 둘러싼 ‘순수 생명윤리’만이 되풀이되면서 논쟁은 발생학의 과학적 ‘사실 논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양극단의 순수에서 벗어난 사회적 관심의 전환을 제안했다. “배아 연구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은 여전히 순수 과학 및 순수 윤리를 믿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비평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며 “배아의 도덕적 지위가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이슈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좀더 넓은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배아 줄기세포든, 성체 줄기세포 연구든, 현실문제로 등장할 수 있는 분배 정의의 문제는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보수 내부논쟁 촉발? 배아 줄기세포 논쟁은 새로운 생명가치의 화두를 던지면서 과학과 생명윤리 외에 현실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 이념의 분열을 촉진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예방치의학의 공중보건정책으로 추진되던 ‘수돗물 불소화’의 찬반논쟁이 시민·진보단체들 사이에 이념적 분열을 일으켰던 것이 그 본보기 사례다. 서이종 교수는 저서 <과학사회논쟁과 한국사회>(2005)에서 1998년 이래 국내에서 불소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부와 시민단체, 보건의료단체와 환경단체 사이 논쟁을 집중 분석했다. 그는 수돗물 불소화 논쟁을, 산업사회의 치아 건강을 위한 예방치의학이라는 ‘사회의 과학화’, 그리고 불소화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라는 ‘과학의 사회화’ 요구가 대립해 충돌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당시 논쟁은 보건의료 시민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를 중심으로 한 불소화 지지와, 녹색평론사를 중심으로 한 불소화의 위험성 경고가 대립하면서 노동계를 포함한 시민·진보단체들의 분열로 확산했다. 좀더 심각한 이념의 논란을 줄기세포가 촉발할 수 있다고 서 교수는 내다봤다. “배아를 난치병 환자 치료를 위해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는 일종의 근대주의적 태도”라고 규정하는 그는 “그런데 근대적 사회주의에 가까운 진보정당이 배아 연구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미국 부시 정부와 맥을 함께할 만한 국내 보수정당이 배아 연구를 지지하는 것은 정통 진보와 정통 보수의 이념에서 보자면 다소 정리되지 못한 이념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줄기세포 논쟁은 진보와 보수 진영에 내부 논쟁을 자극해, 수돗물 불소화 논쟁이 그랬던 것처럼 정통과 수정의 진보 이념, 정통과 수정의 보수 이념들 사이에 차이를 좀더 드러내게 하는 효과를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숙한 과학논쟁’ 눈을 높이자 <한겨레> 책·지성섹션 ‘18.0도’는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황상익 생명윤리학회장, 조무제 경상대 총장, 이동익 신부 등 생명과학자와 종교·윤리학계 인사 4명한테 평행선의 갈등을 되풀이하는 배아 줄기세포 논쟁과 관련해 성숙한 토론의 조건을 물었다. 이들은 모두 ‘논쟁 상대의 존중’을 꼽았다. 또 ‘정확한 정보와 지식에 근거한 논쟁’을 주문했다. 최근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 생명윤리학자는 “생명윤리가 배아 연구를 반드시 반대하는 것도 아니며 다양한 시각들이 있는데도 생명윤리를 ‘과학 진보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매도하는 사회분위기를 지켜볼 때 좌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생명윤리학회는 최근 생명윤리와 생명과학이 “상보적 관계이며 우군의 관계”일 수 있음을 강조하며 줄기세포 연구자들한테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황우석 교수팀도 최근 ‘열린 자세’를 거듭 밝히고 있다. 지난 15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종교·시민단체 인사의 줄기세포 연구 참여 가능성’을 밝힌 데 이어 생명윤리학회가 공개토론 제안에 대해 대화의 자리를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환석 국민대 교수(과학사회학)는 “세계 수준의 줄기세포 연구성과에 비춰 그것의 사회적 의미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심이나 논의 수준은 너무도 뒤진 상태”라며 과학의 수준에 걸맞게 열린 토론과 논쟁이 진지하게 벌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윤리 뿐 아니라 줄기세포 과학의 분배 정의 문제나 여성의 난자 보호대책 등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