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 출간한 고은 시인
“내 몸속 박테리아까지 쓰고파…핵으로 통일 멀어질까 두려워”
고은(사진) 시인이 신작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서울대출판문화원)를 내놓았다. 최근 몇 해 사이 국내외 매체에 발표한 글들과 문학행사의 기조연설 및 발제문, 그리고 등단 50주년(2008년)을 전후해 행한 대담 등이 묶였다. 자신의 시세계와 시인으로서의 생애, 그리고 언어와 역사, 문명 등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책 제목은 2008년 일본의 학자 와다 하루키와 나눈 대담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고대 인도의 유식사상에서는 세계의 진행을 ‘폭류’에 비유했지요. 폭류까지는 제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격류라고 완화해 인용한 것입니다.”
책을 내고 23일 낮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시인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체로 시에 관한 것이라서 하나의 시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시를 미워한 적도 있고 내 시를 불태운 적도 있고 시를 쓰느니 리어카를 끌고 장사를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결코 시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특유의 시적 비유로 자신의 시론을 설명했다.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거부합니다. ‘시는 곧 사무사(思無邪)’라, 일체의 삿됨이 없는 것이라고 한 공자의 시론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시는 세상에 널려 있다’는 말을 저는 좋아합니다. 언어 밖을 떠돌다가 언어로 수습되는 게 시 아닐까요? 저는 서구 시론에 의존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 배꼽과 모세혈관과 내장에 들어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를 시로 쓰고 싶어요. 정작 재주가 없어서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제 시는 김소월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지난 4월 <만인보> 전 30권을 완간한 시인은 “요즘도 <만인보>에 포함시킬 만한 시상이 계속 떠오른다”고 말했다. 30권으로 마무리되었음에도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만인보>는 세상에 대한 직무유기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만인보>만이 아니라 시와 문학 자체가 세상의 지극히 일부만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저는 언어의 신체화랄까 육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령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으르렁거릴 때 꼬리가 곧추서서 떨리는 걸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또 주인이 돌아올 때 개 꼬리가 나타내는 하염없는 기쁨을, 하루 내 온몸으로 우는 매미의 울음을, 가을 밤을 새워서 우는 벌레 울음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간 언어에 대한 이런 생각이 이번 책에 조금은 반영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지난달 초 남북 공동으로 추진돼 온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정부의 예산 집행 거부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며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요즘 스스로를 비정치화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그럼에도 최근 북핵 위기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절실한 꿈이었던 비핵화가 무산될지도 모릅니다.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통일은 그만큼 멀어집니다. 핵이 들어오면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통일론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옛날 식으로 전쟁에 의한 통일론이 득세할 거고, 그렇게 되면 60년 전 겪었던 폐허가 다시 올 수도 있어요. 큰일입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최근 저는 언어의 신체화랄까 육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가령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 으르렁거릴 때 꼬리가 곧추서서 떨리는 걸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또 주인이 돌아올 때 개 꼬리가 나타내는 하염없는 기쁨을, 하루 내 온몸으로 우는 매미의 울음을, 가을 밤을 새워서 우는 벌레 울음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인간 언어에 대한 이런 생각이 이번 책에 조금은 반영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지난달 초 남북 공동으로 추진돼 온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이 정부의 예산 집행 거부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며 호소문을 발표한 바 있다. “요즘 스스로를 비정치화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그럼에도 최근 북핵 위기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절실한 꿈이었던 비핵화가 무산될지도 모릅니다.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통일은 그만큼 멀어집니다. 핵이 들어오면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통일론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옛날 식으로 전쟁에 의한 통일론이 득세할 거고, 그렇게 되면 60년 전 겪었던 폐허가 다시 올 수도 있어요. 큰일입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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