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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여행자에겐 보이지 않는 네팔의 속살

등록 2010-12-31 20:11수정 2010-12-31 20:14

팔파사 카페
팔파사 카페
국내 소개된 첫 네팔작가 소설
삶과 투쟁의 현장 그린 문제작
젊은 화가와 반군의 교감 담아
팔파사 카페
나라얀 와글레 지음·이루미 옮김/문학의숲·1만1800원

만년설 덮인 히말라야와 유채꽃밭 사이를 지나는 트레킹 코스. 네팔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주로 여행자의 눈에 비친 것들이다. 네팔을 다룬 우리의 소설과 시 역시 대부분 현지 여행 경험을 담고 있다. 가이드와 셰르파가 아니면 원조 대상자로나 인식되기 십상인 네팔 사람들의 삶의 실상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어떤 꿈을 꾸며 어떤 고민을 품고 있을까.

네팔 작가가 쓴 그네들의 이야기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던 차에 새로 번역돼 나온 <팔파사 카페>는 아마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네팔 소설일 듯싶다. 네팔의 신문 기자 출신 작가 나라얀 와글레가 2005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네팔에서 5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문제작이기도 하다. 구릉 지대를 배경으로 삼아 네팔의 아픈 현대사가 펼쳐지는 이 소설은 여행지가 아닌 일상과 투쟁 현장으로서의 네팔 본모습을 알게 해 준다.

네팔 현대사의 비극을 한 예술가의 사랑과 버무린 네팔 작가 나라얀 와글레의 소설 <팔파사 카페>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돼 나왔다. 사진은 네팔 트레킹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네팔 현대사의 비극을 한 예술가의 사랑과 버무린 네팔 작가 나라얀 와글레의 소설 <팔파사 카페>가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돼 나왔다. 사진은 네팔 트레킹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소설은 카트만두에서 활동하는 화가 드리샤와 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팔파사 사이의 사랑을 축으로 삼아 진행된다. 가족도 없이 홀로 생활하는 드리샤는 화가이자 작가로서 어느 정도 명망을 얻은 인물. 소설 초반부에서 그는 절실한 연애의 감정이 없는 채로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뒤꽁무니를 쫓는 허랑한 바람둥이로 그려진다. 그러나 인도 여행 중에 마주친 팔파사에게 그는 한눈에 반하게 되고, 둘 사이에 사랑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젊음과 미모, 재능과 부를 겸비한 선남선녀의 그렇고 그런 연애사로 이어지는 듯싶던 이야기는 2001년 6월1일 네팔은 물론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네팔 국왕과 왕실 가족 살해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방향을 튼다. 폭도들의 시위와 경찰의 통행금지령으로 뒤숭숭하던 어느 날 드리샤에게 대학 시절 친구 싯다르타가 찾아온다. 학생회장 출신으로 마오이스트 반군에 가담했던 그는 드리샤의 집에 피신해 있고자 왔던 것. 폭력과 저항으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추구하는 싯다르타, 그리고 선과 색채를 통해 아름다움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드리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펼쳐진다.

“넌 개인의 중요성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둬. 그게 네가 더 큰 그림을 포착하지 못하는 이유야. 우린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싸우고 있어.”

“그림은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있는 게 아냐. 예술은 정치가 아니니까. (…) 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사용해. 정치를 끌어들이지는 않아.”

“아름다움은 삶의 쓰디쓴 진실 속에 있는 거야. 네 색깔이 표현한 건 모두 환상에 불과해.”

“예술가가 자신의 캔버스에 정치적 견해를 담기 시작하면 예술가와 정치가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게 될 거야.”

논쟁이 평행선을 달릴 뿐 접점을 찾지 못하자 싯다르타가 드리샤에게 제안을 한다. 드리샤를 시골로 데려가 동포들의 삶의 실상을 보여주겠노라는 것. 결국 싯다르타의 제안을 받아들인 드리샤는 캔버스와 갤러리를 떠나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서부 구릉지대를 여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외동딸을 반군에 보내야 하는 아버지, 아들 둘을 정부군과 반군에 하나씩 보내 놓고 애 끓이는 부모, 동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총을 든 소녀들, 흰 꽃을 총구에 꽂고 행진하는 반군 악단,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뒤흔들고 산산조각 내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교전…. 그 과정에서 다름 아닌 싯다르타가 정부군의 총에 희생되고, 드리샤는 그의 죽음 이후 새로운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싯다르타와 여행하는 동안 나는 우리나라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사회가 개혁될 잠재 가능성을 보았다. 나는 내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거나 선율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구릉지대를 여행하는 동안 팔파사라는 구체적인 인간을 상대로 한 드리샤의 사랑은 조국 네팔과 네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바뀐 듯하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경찰차를 겨냥한 반군의 테러에 희생된 팔파사의 죽음이 그렇게 바뀐 사랑을 완성시킨 사건이라면, 안전기획부 요원들에게 붙들려 가 실종되기 전까지 드리샤가 꿈꾸었던 ‘팔파사 카페’는 그 두 사랑을 화해시키고자 한 그 나름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은 액자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문 기자 나라얀의 시점을 취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드리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본문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 작품은 우리를 샹그릴라 너머로 데리고 가 심연 저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고 류시화 시인은 추천사에서 썼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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