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둑질
이 책에서 다루는 ‘거룩한 도둑질’이란 중세 유럽에서 있었던 기독교 성인들의 유골을 훔치는 행위를 말한다. 탐욕스런 장사꾼뿐 아니라 당대 수도사나 사제들이 도둑질을 했다는 게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 ‘착한 거짓말’이라는 말보다 더 지독한 형용모순인 ‘거룩한 도둑질’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중세의 성인 유골에 대한 숭배는 집단적 믿음에 가까웠다. 기독교는 ‘최후의 날 기독교인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설파했고, 허약한 중앙권력 대신 기독교에 삶을 의탁했던 민초들은 ‘순교자의 유골을 곁에 두면 살아서 복 받고 죽어서 성인과 함께 부활한다’고 굳게 믿었다.
나아가 교회는 이런 유골에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었다. 유골 도둑질의 무용담을 다룬 문학이 번성했고, 성직자들은 훔친 유골로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도시에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또 지방 변두리를 돌며 훔친 유골과 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고 교회 건축비를 조성하기도 했다. 중세인들의 정신세계와 삶이 투영된 ‘유골’이 당시 성직자들에게는 기독교적 지배를 위한 일종의 매개였던 셈이다. ‘유골의 시대’는 16세기 들어 더 강력한 지배 논리와 제도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유골이 우상이라고 비판하는 종교개혁가들이 나타났고, 마르틴 루터 같은 이는 성베드로성당 건축비 마련에 혈안이 된 교황의 면죄부 장사에 반발하며 기존 질서에 맞섰다. 지은이는 우리가 ‘거룩한 도둑질’에 모순을 느끼듯 “후손들도 우리의 현재에서 모순을 발견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페트릭 기어리 지음·유희수 옮김/길·1만8000원.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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