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현(39)씨는 또래 작가들 중에서 매우 이채로운 존재라 할 수 있다. <청동거울을 보여주마>와 <붉은 소묘> 두 권의 소설집에 갈무리된 그의 소설세계는 고전주의적 예술가 소설이라는 말로 요약될 법했다. 문학판 안에서나 사회의 다른 부문에서나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만을 좇는 세태에 그는 고집스럽도록 우직하게 고전적 풍모의 소설을 추구해 왔다. 그의 소설이 보이는 고전적 특성은 탱화나 무구(巫具)와 같은 소재에서 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소재를 다루는 의고적 문체에 힘입은 바 크다. 세월과 시속이 아무리 재바르고 요상하게 변해도 문학과 예술의 본령은 예대로의 것에서 변할 수 없다는 믿음을 그는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고체 세월의 시속 거슬러
그가 1997년 등단 이후 8년 만에 선보인 첫 장편소설 <이카로스의 마지막 말>(전2권, 랜덤하우스중앙)은 문학과 예술에 관한 예의 고전적 가치관을 자전적 성장소설의 틀에 담아 풀어 보인 작품이다. 소설 주인공은 서울 변두리 사하촌 인근에서 성장하는 소년 ‘수오’와 그의 학교내 경쟁자이자 친구인 ‘영후’, 그리고 절에 기식하는 사팔뜨기 소년 ‘진구’ 셋이다. 여기에 이들 모두의 잠재적 연인으로서 세 친구 사이에 우정과 질시가 착종된 미묘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마돈나형 여자친구 ‘소미’의 존재가 더해진다. 수오가 대학에 진학하면서는 연극반에서 만난 ‘팜 파탈’ ‘세은’과 그의 연인인 카리스마의 소유자 ‘J' 등이 수오의 성장에 조력자로 등장한다. “개발이란 이름의 단층”(1권 67쪽)으로 축약되는 70년대의 사회상, 그리고 정치 과잉이었던 80년대 대학가의 풍경이 성장담의 바탕을 이룬다.
소설은 “변두리 아이에서 도시의 소년으로”(1권 68쪽), 또는 “유년의 자유에서 소년의 방종으로”(1권 84쪽) 나아간 수오가 어느 순간 “단두대가 내리꽂히듯…청년이 되어버”(1권 240쪽)렸다가 마침내는 “비참하게 아름다운 청춘[을] 끝”(2권 164쪽)내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유년에서 소년으로, 그리고 다시 청년으로 성장했다가는 결국 ‘청년’과도 결별하게 되는 과정은 혼란과 방황,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쓰라린 행로라 할 수 있다. 이러할 때 성장이란 한마디 비명으로 표현될 수 있을 법한데, 아닌 게 아니라 소설은 수오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의 비명과도 같은 격렬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다.
수오가 소미와 첫 대면하는 소설 앞부분에서 소년 수오는 신축 교회의 예배당에 숨어 들어가 손에 든 벽돌로 스테인드글라스를 깨뜨리고 그로 인해 피범벅이 되는데, 그 모습을 본 소미는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면서 자기가 쏟아내는 바로 그 비명이 견딜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힘껏 귀를 틀어막”(1권 64쪽)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비명은 훗날 소미의 사랑을 놓고 세 남자친구가 뒤엉켜서 서로 때리고 맞는 아수라장 같은 상황을 보며 내지르는 소미의 또 한 번의 비명(2권 160쪽)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그것은 이카로스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 운명’(=줄여서 ‘비명’?)에 대한 각성이자 절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의 단층시대를 지나 정치담론의 과잉을 넘어
비참하게 아름다운 청춘 끝내기까지 격렬한 성장통
이카로스의 마지막 말은? 세상을 향한 외침, 자유!
이카로스는 알다시피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저으며 태양 가까이 날아 올랐다가 밀랍이 녹으면서 추락해 죽은 신화 속의 불운한 청년이다. 소설 속에서 이카로스는 최후의 순간에 ‘아버지, 자유!’라 외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내 앞선 진술을 번복해 이렇게 다시 쓴다: “최후의 순간 이카로스는 아버지를 향하여 소리쳤던 것이 아니다. 그는 제 머리로 들이받을 것 같은 세상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한계를 향하여,/ ‘자유!’ /라는 외침을 남겼다.”(2권 250쪽)
이카로스의 외침이 수오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들과 소설 바깥의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사실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들에 아래와 같이 표현되어 있다. 거칠 것 없는 자유와 분출하는 생명력의 화신과도 같았던 진구가 어처구니없게도 먼저 죽은 뒤 남은 수오와 영후가 그의 유해를 바다에 뿌린 다음의 서술이다.
“삶이란 채찍질에 나가야 할 대상”
“다시금 비명 소리가 들렸다. 창공으로 날개가 솟구쳤다. 날개가 파닥이는 것이 아니라 창공이 일렁이는 것이었다.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순식간에 불타 없어지는 자유가 아득하게 반짝였다. 어쩌면 신은 말씀이 아니라 비명으로 세상을 빚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2권 254쪽)
이 장면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각기 제 몫의 방황과 모색을, 그러니까 비명과도 같은 몸부림을, 최선을 다해 해 보는 것인데, 그 방황 또는 몸부림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관념과 낭만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어 보인다. 그 점은 아마도 이 자전적 성장소설에서 주인공 수오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관념론자의 딱지”(2권 130쪽)를 얻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너무 낭만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2권 139쪽)에 잠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관념과 낭만은 겉보기에 근사하고 무언가 있어 보이는 반면, 자칫 치기와 소화불량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소지도 다분한 장치들이다. 민경현씨의 관념적이고도 낭만적인 이 소설이 치기와 소화불량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개념과 맥락, 어휘와 문장을 장악하는 작가의 탄탄한 악력(握力) 덕분으로 보인다. 낭만을 정도껏 다스리고 관념을 적절히 통어한 뒤의 어떤 문장들은 밑줄을 그어 가며 읽고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어떤 인간에게는 율법의 자리에 강령을 세워놓고서라도 삶이란 채찍질해 나가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에게 삶이 어디로 가는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악취 나는 구덩이에서 다른 악취가 나는 구덩이로 옮겨가는 동안 그의 삶은 찌그러진 깡통 같은 소리를 냈고 그럴수록 경멸에 찬 채찍질은 더 혹독해지게 마련이었다. 마음껏 탕진해서 마침내 삶이 그 거죽만 남았을 때 그는 텅 빈 형이상학의 주머니를 너풀거리며 낄낄거릴 것이다. 유령처럼….”(2권 7쪽)
“그의 영혼과 육체는 부조화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오욕을 뒤집어쓴 그의 영혼은, 비에 젖어 추적거리는 그의 육신 뒤로 반걸음쯤 떨어져 찰박찰박 흙탕물을 차며 걷고 있었다.”(2권 28쪽)
“그 세상에 등을 돌리면 고독했고 그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면 증오스러웠다.”(2권 110쪽)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개발의 단층시대를 지나 정치담론의 과잉을 넘어
비참하게 아름다운 청춘 끝내기까지 격렬한 성장통
이카로스의 마지막 말은? 세상을 향한 외침,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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