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
어설픔
아프다며 찾아온 환자한테 ‘나는 당신이 아프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한의사가 있다. 그는 침을 놓고 약을 지어주길 기대하는 환자에게 ‘먼저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하거나, 음악을 틀어주거나, 누워서 하늘을 좀 보라고 한다. 환자와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도 있다. 어느 날 찾아온 한 여성 환자가 그에게 말했다. “살아갈 희망이 하나도 없어요….” 두 번째 진료 때도 그 여성은 “저는 세상에 잘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맥을 짚어보니 세포의 생기가 다 빠져나가 그의 몸은 ‘겨울날 검불’ 같았다. 거친 세상에 대한 적응장애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탓이었다. 그는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당신을 치료하지 않고, 환자라고 부르지도 않고, 당신이 사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음악을 틀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여성은 음악을 듣다 잠들고, 이야기를 하다 잠들었다. 그 여성은 현재 그와 평생을 마주보는 긴 여행을 하는 중이다. 두 아이도 함께. 이 책에는 그의 아내뿐 아니라 한의사인 지은이가 만난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에게 들려줬던 느슨하게 사는 방법과, 내면을 깨우는 여행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은이는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꺼벙한 표정으로 ‘이젠 좀 어설퍼지라’고 권한다. 그가 보기에 아프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삶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몸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반드시’, ‘기필코’, ‘무조건’이라는 어휘가 사라진 삶을 상상하라고 ‘어설프게’ 부추긴다. 이기웅 지음/조화로운삶·1만2000원.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아프다며 찾아온 환자한테 ‘나는 당신이 아프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한의사가 있다. 그는 침을 놓고 약을 지어주길 기대하는 환자에게 ‘먼저 당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라’고 하거나, 음악을 틀어주거나, 누워서 하늘을 좀 보라고 한다. 환자와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도 있다. 어느 날 찾아온 한 여성 환자가 그에게 말했다. “살아갈 희망이 하나도 없어요….” 두 번째 진료 때도 그 여성은 “저는 세상에 잘 안 맞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맥을 짚어보니 세포의 생기가 다 빠져나가 그의 몸은 ‘겨울날 검불’ 같았다. 거친 세상에 대한 적응장애로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린 탓이었다. 그는 치료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당신을 치료하지 않고, 환자라고 부르지도 않고, 당신이 사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음악을 틀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여성은 음악을 듣다 잠들고, 이야기를 하다 잠들었다. 그 여성은 현재 그와 평생을 마주보는 긴 여행을 하는 중이다. 두 아이도 함께. 이 책에는 그의 아내뿐 아니라 한의사인 지은이가 만난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에게 들려줬던 느슨하게 사는 방법과, 내면을 깨우는 여행 이야기도 담겨 있다. 지은이는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꺼벙한 표정으로 ‘이젠 좀 어설퍼지라’고 권한다. 그가 보기에 아프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삶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라는 몸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반드시’, ‘기필코’, ‘무조건’이라는 어휘가 사라진 삶을 상상하라고 ‘어설프게’ 부추긴다. 이기웅 지음/조화로운삶·1만2000원.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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