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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발랄한 ‘금강경’ 당신에게 말을 걸다

등록 2011-03-18 20:26

〈붓다의 치명적 농담〉〈허접한 꽃들의 축제〉
〈붓다의 치명적 농담〉〈허접한 꽃들의 축제〉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헤쳐온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 ‘소’
“무아, 집착의 나로부터 떠나는 것”
〈붓다의 치명적 농담〉
한형조 지음/문학동네·1만9800원

〈허접한 꽃들의 축제〉
한형조 지음/문학동네·2만2000원

한형조(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자신을 “띠풀로 덮인,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헤쳐온”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동아시아 고전 세계 중에서 특히 유학과 불교에 관한 연구서를 여럿 냈는데, 2008년에 <조선 유학의 거장들>과 <왜 조선 유학인가>를 펴냈고, 앞서 선불교의 화두를 설명한 <무문관, 혹은 너는 누구냐>를 썼다. 이번에 출간한 <붓다의 치명적 농담>과 <허접한 꽃들의 축제>는 불교에 관한 일종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2004년부터 2년 반 동안 주간 <현대불교>에 강의 형식으로 연재했던 것을 묶었다. 대승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경전 가운데 하나인 <금강경>을 바탕으로 삼은 불교 강의가 이 책들이다. 육조 혜능이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을 담고 있다”고 한 것이 바로 <금강경>이다.

이 책들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별기’라는 말과 ‘소’라는 말이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의 부제는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이고 <허접한 꽃들의 축제>의 부제는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소’다. ‘별기’(別記)란 경전의 자구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해설하는 것이고, ‘소’(疏)란 경전의 문자를 하나하나 뒤쫓으며 주석하는 것이다. 지은이의 표현으로 “경전의 언어를 축자적으로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소의 방식이라면, “오해와 헛디딤의 위험은 크지만 과감한 해석과 체계를 제시하는” 것이 별기의 방식이다. 원효는 대승불교의 개론서인 <대승기신론>에 대해 처음에 ‘별기’를 썼다가 흡족하지 않아 뒤에 ‘소’를 다시 썼는데, 지은이도 원효의 선례를 따른 셈이다.

이 책들, 특히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문체다. 지은이의 문장은 통상의 불교 해설서에서 보기 어려운, 톡톡 튀는 발랄한 문장이다. 지은이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적 언어의 지평 위에서 언설하고자 했다”고 밝혔는데, 불교 언어가 일상성과 현대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믿음을 <금강경> 한역본의 역사를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금강경> 한역본은 5세기 초 인도 승려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과 7세기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에 다녀와 번역한 것 두 판본이 대표적인데, 지금 우리한테 익숙한 것은 구마라습의 번역본이다. 구마라습은 중국 독자들을 배려해 이해와 소통에 중점을 두었고, 현장은 원뜻에 충실한 딱딱한 번역을 택했다. 당대의 언어로 풀어준 것이 구마라습의 번역본이 채택된 이유였던 것이다. 지은이는 육조 혜능이 선의 실질적 창시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파격적인 구어 사용’에 있었다고 말한다. “혜능의 이런 과격한 탈전통이 없었다면 중국 불교는 없었을 것”이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이어 지은이는 불교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가 불교에 관한 흔한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그런 오해 가운데 하나가 ‘삼계유심, 만법유식’이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삼라만상이 다 마음의 반영이요, 세상 모든 것이 다 의식의 결과일 뿐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곧바로 이 세상은 마음이 만든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대승기신론>은 “마음이 일어나면 수많은 세계가 생겨나고 마음이 꺼지면 수많은 세계가 사라진다”고 설한다.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뒤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 만법은 오직 의식일 뿐이니, 마음 밖에 의식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라고 노래했다. ‘이 세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리지만, 지은이는 단언한다. “불교는 세계의 실재를 에누리 없이 긍정합니다!”

그렇다면 ‘오직 마음뿐’이라는 그 모든 말은 뭔가. 불교가 문제 삼는 것은 마음 밖에 따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그 실제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시선”이다. 불교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를 법(法)이라 하고, 주관적으로 인식한 세계를 상(相)이라 하는데, 문제는 이 ‘상’이 사람마다, 마음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마음은 사적인 관심과 욕망으로 세계를 왜곡시킨다. 비유하자면, 중력장이나 블랙홀이 우주 공간을 구부러뜨리듯이, 마음은 각자의 관심·욕망으로 실재를 왜곡한다. 이렇게 주관적으로 왜곡된 상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각자가 가진 것은 상(相)일 뿐, 법(法)이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가 자아의 주관적 환상 속에서 그 편견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화들짝 깨닫는 일”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 깨달음이 불교의 첫걸음이다. 그리하여 주관적 환상에서 벗어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지은이는 ‘공’(空)이라고 말한다. 공이란 마음이 비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자기의 이해관심으로부터 해방된 상태가 공이며, 그때 공은 무아(無我)와 같다. 무아는 내가 본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관적 환상에 집착하는 나로부터 떠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무아 상태가 되면, 우리는 탐욕이나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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