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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피아노 구걸하며 자란 음악가 자전적 소설로 음악 풀어내다

등록 2011-07-01 20:20

젊은 음악가의 초상. 이강숙 지음/민음사·1만2000원
문학 꿈 못 버린 한예종 전 총장
성악 콩쿠르 입상 등 경험담 녹여
“다시 살면 음악 대신 문학 할 것”
서울음대 교수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원로 음악가 이강숙(75)씨.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원로 음악가’보다는 ‘청년 작가’로 불리는 쪽을 더 좋아한다. 2001년 단편 <빈병 교향곡>을 <현대문학>에 발표하면서 뒤늦게 작가의 꿈을 이룬 그는 요즘 문학을 향한 사랑에 흠뻑 빠져 있다. 그가 첫 장편 <피아니스트의 탄생>(2004)과 등단작을 표제작 삼은 첫 단편집 <빈병 교향곡>(2006)에 이어 두 번째 장편이자 세 번째 소설책 <젊은 음악가의 초상>을 내놓았다.

젊은 음악가의 초상. 이강숙 지음/민음사·1만2000원
젊은 음악가의 초상. 이강숙 지음/민음사·1만2000원
소설은 김철우라는 소년이 문학과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성악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은 뒤 피아노라는 악기의 세계에 입문하는 음악적 성장담을 그린다. 지난 장편 <피아니스트의 탄생>에 이어 다시 한번 젊은 음악도를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서는 예술에 대한 작가의 ‘젊은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공부도 잘 하는 아들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던 엄마, 상급학교 진학과 ‘출세’를 위해 영수국을 필두로 한 학과공부로 학생을 몰아붙이는 학교, 그런 엄마와 학교의 압박을 물리치고 끝내 음악의 길로 나아가는 철우의 선택 등 소설은 곳곳에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담고 있다.

“처음 피아노 소리를 듣고 기절할 정도로 좋았던 일, 피아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들으려고 그리고 나중에는 직접 피아노 건반을 눌러 보려고 피아노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미친 개처럼 헤맸던 ‘피아노 구걸’ 체험은 실제로 제가 겪었던 일들입니다. 철우가 배재학교에서 열린 전국 고교생 성악 콩쿠르에서 1등을 했던 것 역시 제 체험이지요.”

철우는 중학교 시절 음악과 문학을 함께 좋아했으나 국어 선생님의 한마디에 커다란 상처를 받고서는 문학에 대한 꿈을 일단 접어야 했다. 국어 시간에 써 낸 철우의 시를 본 선생님이 “너는 공부나 하고 노래나 불러야겠다. 시는 안 되겠다”라고 비수를 꽂듯 말했던 것. 이 일 역시 작가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고. 작가는 소설에서도 등장시킨 <교실의 살인자>라는 책을 언급하면서 “교사가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학생들에게는 총칼처럼 무시무시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예술가 소설에서 그가 학교 현장과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힘주어 강조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소설은 “자신을 음악의 신에게 바치기로 결심한” 철우가 성악 콩쿠르에 입상한 뒤 “자기 노래를 찾아” 어둠 속을 뛰고 또 뛰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마주치는 수수께끼 같은 장면으로 끝난다. “저 멀리 동지를 만나기나 한 듯이 어떤 사람이 연민의 정을 안고 고쳐 배우려고 뛰어오는 철우를 바라보고 서 있다.”

“결말 장면은 고통스러운 예술의 길에 막 들어선 주인공을,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는 다른 누군가가 불쌍하다는 듯 지켜보는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2001년 이후 걷고 있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바로 그 길인지도 모르죠.”

이강숙씨 자신은 서울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음악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교 조교수, 서울음대 교수를 거쳐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총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음악인으로서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렇게 음악인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문학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1965년, 이청준의 <퇴원>을 당선작으로 낸 <사상계> 신인상에 응모했다가 낙선했을 때까지 문학에 대한 그의 짝사랑은 이어졌다. 그 뒤 오랫동안 애써 누르고 있던 문학에 대한 욕망이 은퇴 뒤 처음 쓴 단편 <빈병 교향곡>으로 비로소 분출될 수 있었다.

“나이도 있고 나름 경력도 있기 때문에 음악 쪽에 가면 대우도 받는 편인데, 왜 뒤늦게 문학을 시작해서 이 고생이냐는 이들이 많습니다. 음악을 하는 후배나 제자들은 섭섭하게 들을지 모르겠지만, 은퇴한 뒤부터 제 관심은 온통 소설뿐입니다. 음악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어떤 갈증 같은 걸 문학이 채워 주는 것 같아요. 문단의 말석이나 차지하고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생을 다시 산다면 음악이 아니라 문학이나 철학을 하고 싶어요. 음악은, 가장 사랑하는 애호가 정도면 족할 것 같아요.”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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