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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화산 같은 마음 치료해준 이름 세 글자

등록 2011-07-15 15:57수정 2011-07-23 03:27

일러스트 <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 가운데
일러스트 <분황사 우물에는 용이 산다> 가운데
북하니 독자가 말한다! 판타지가 재미있는 이유
갑갑한 가슴 시원하게 해주는 비상구
혹부리영감부터 절대반지 이야기까지
환상의 책여행, 숨고르는 기회 선사해
나는 열세 살 대한민국 중딩이다. 나는 별 말썽 없이 조용히 지내는 모범생 중딩이다. 하지만 내 가슴은 휴화산처럼 언제나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대한민국 중딩들의 하루 일과를 아시는 분들은 모두 내 가슴의 휴화산을 이해하시리라. 그러나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엄마도, 내 가슴의 위험한 현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잘 모르고 있을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 이런 끓어오름을 멈추게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화산 같은 내 가슴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비상구가 바로 ‘판타지’다.

판타지! 현실 속엔 없지만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꿈꿀 수 있는 환상의 세계. 어린 시절,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두드리기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바비인형이 무진장 나오는 도깨비방망이를 소망했던 적이 있었다. 천진했으니, 착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동화의 주제를 철석같이 믿으며 동생의 과자도 뺏지 않고 하루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하려고 나름 애를 썼다. 밤마다 고사리손으로 기도했는데도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신을 원망도 했었다.

한 살씩 먹어가며 착하게 산다고 다 복을 받는 건 아니라는 교훈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허탈했지만 내게는 또다른 판타지가 필요했다. 조금 철이 든 내게 다가온 매혹적인 판타지는 <반지의 제왕>이었다. 도깨비가 가진 촌스러운 방망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대한 힘을 가진 절대반지! 악의 왕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반지를 없애버리려는 프로도의 힘겨운 싸움. 강한 것이 아름답다는 약육강식의 현실 세계에서도 프로도의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 힘이 악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는 더 무서운 괴물로 변한다. 현대사에는 그런 괴물이 종종 등장한다. 히틀러와 여러 독재자들, 또 최근 위선적인 얼굴로 슬그머니 등장하는 거대 재벌과 신제국주의들.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단군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도 이런 판타지에 속한다. 지루하고 딱딱한 역사 이야기도 판타지를 통해서 보면 훨씬 쉽고 친근하게 다가와서 좋았다.

얼마 전 기말고사가 끝났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원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많이 속상하다. 친구들끼리 수행평가 점수 1점을 두고 실랑이하는 걸 보면 기분이 참 씁쓸하다. 언제쯤이면 이런 전쟁이 끝날까? 방학 중에도 꽉 짜인 스케줄로 별로 여유가 없을 것 같다.

오아현/고덕중 2학년 5반, 북하니 독자
오아현/고덕중 2학년 5반, 북하니 독자
그래도 틈을 내 나는 나만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곳은 판타지의 세계다. 긴장감 넘치는 모험의 세계에서는 수행평가 점수 같은 건 하찮은 고민일 뿐이다. 그곳에서만큼은 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정의의 사도로서 신의 보호를 받으며 선을 이루기 위해 종횡무진하며 하늘을 날고 험준한 산을 넘는다. 그 여행에는 예상 못한 함정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악인의 방해, 음모가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주인공 편에 서 있는 보호자의 도움으로 나는 그 모든 도전을 이겨내고 결국 승리한다. 승리는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진부한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도전과 용기 그리고 인내와 끈기. 결국엔 이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지루한 장맛비가 그치면 달아오르는 더위가 시작될 것이다. 대한민국 중딩들이여! 잠시 숨을 고르자. 주위를 돌아보면 손 닿는 가까운 곳에 당신만의 환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그곳으로 들어가 보시라. 그곳을 신나게 여행하고 돌아오면 더위와 자잘한 고민들은 흔적도 없이 도망가고 사라질 것이다. 지금 가만히 눈을 감고 내가 내미는 이 손을 꼭 잡고 함께 뛰어들어 보자.

[북하니 어린이도서특집] '우리 아이 여름방학 어떤 책이 좋을까요?'


오아현/고덕중 2학년 5반, 북하니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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