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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만딱 감옥이었주마씸” 사투리에 담은 제주의 아픔

등록 2011-08-12 21:17

문충성(73) 시인
문충성(73) 시인
시인 문충성씨의 10번째 시집
4·3 사태로 인한 상처 등 풀어내
제주에서 태어나 평생을 제주 섬과 바다를 노래해 온 문충성(73) 시인이 열 번째 시집 <허물어버린 집>을 묶어 냈다.

‘시인의 말’에서 제주 토박이말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시인은 시집 앞부분에 4·3 사태를 제주 말로 노래한 시 여러 편을 배치해 놓았다.

“섬 하나가 만(※아래아)딱 감옥이었주마씸/ 건너가지 못허는 바당은 푸르당 버청/ 보는 사람 가슴까지 시퍼렁허게 만들었쑤게/ 희영헌 갈매기들 희영허게 날곡//(…)// 무싱거마씸/ 자유가 어디 있었쑤강/ 죽음이었주마씸/ 섬 하나가 만(※아래아)딱”(<섬 하나가 만(※아래아)딱>)

그동안 4·3을 다룬 시나 소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주 말로 듣는 그 사태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제주 섬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산폭도가 되고 빨갱이가 되고/ 산간마을들 불탔”(<우리는 때로 우리를 토벌했습니까>)던 제주 사람들의 심사는 그네들의 말에 실려 전해질 때 한결 절절해진다. 이 시의 제목과 본문에 거듭 등장하는 ‘만(※아래아)딱’이라는 말을 표준어 ‘모두’나 ‘전부’로 바꾸어 읽어 보라, 어감이 제대로 살아나는지. “토벌대 군인들과 싸우당 총 맞아 죽은 시신들 만(※아래아)딱/ 우리 밭 한(※아래아) 녘에 땅 팡묻었주!”(<속냉이골 돌무더기 둔덕-고정기 할아버지는 말한다>)라거나 “무더기로 빨갱이로 몰아(※놔 + ㅇ) 총 죽였덴/ 하르방 할망 예펜 아이 헐 거 어시/ 의귀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아(※놔 + ㅇ) 만(※아래아)딱”(<현의합장묘>), 또는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만(※아래아)딱 잃어버렸는지/ 남문통/ 4·3 때 죽은 동네 사람들/ 기억나지 않네요”(<회귀>)와 같은 대목에서도 총체적인 죽음과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달하는 데에 ‘만(※아래아)딱’은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다.

인용 시 <회귀>에서 화자가 잃어버린 대상은 동네 사람들만이 아니다. “할로산과 흐르지 않는 남수각 시내/ 개떡 같은 초가 마을이/ 살았어요”로 시작하는 이 시는 한때 “살았”으나 지금은 “잃어버”린 것들의 목록을 40여 행에 걸쳐 나열한다. 돔박낭, 바(※아래아)름가메귀, 삥이, 싸움닥(※아래아), 깅이, 보말, 각제기, 고등에, 자리, 어렝이, 톨, 맘(※아래아), 도새기, 두테비 같은 정겨운 이름들은 읽는 이의 그리움을 자극하는데, 이들을 앗아 간 것이 딱히 4·3의 불바람만은 아니었다. 이 시집의 또 다른 주제인 시간의 풍화작용이 등장하는 대목이 이 지점이다.

“그 시절 그 동무들/ 모두/ 그리움 속/ 숨바꼭질하던 세월/ 하얗게/ 흘러가 이젠/ 숨을 곳도 없는데 희끗희끗/ 백발 이고 시방/ 어디로 가는 것이냐/ 너는?/ 나는?”(<강아지풀> 부분)

“갑자기// 내가// 낯설어// 간다 옛 그리매// 나를 끌고// 다닌다// 요즘// 나에게서// 사라져간다// 없을 적이// 많아져간다 그래/ 어디로 갔니?”(<갑자기> 전문)

허물어버린 집
 문충성 지음/문학과지성사·8000원
허물어버린 집 문충성 지음/문학과지성사·8000원
어느덧 칠순을 넘어 팔순을 향해 가는 연치. 시인이 알던 세계는 대부분 과거의 기억 속으로 침잠해 버렸다. 함께 뛰놀던 동무들은 행방이 묘연하고, 자신의 행로 역시 예측할 수가 없다. 그런 자신이 스스로에게도 낯설게 여겨지는데, 이른 아침 솔부엉이는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그대 뭐 하러 왔니?/ 모든 게/ 너무 늦지 않았니?”(<그렇게>)

세월의 풍마우세가 초래한 파괴와 손실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시집 표제로 쓰인 ‘허물어버린 집’이다. “할머니 어머니가 사셨다/ 돌아가시고 나서/ 허물어버리면 안 될 집을 허물어버”(<허물어버린 집>)린 뒤, 시인은 그 집이 나오는 꿈을 자주 꾼다. 집의 거주자들뿐만 아니라 집 안팎의 온갖 나무들과 진돗개까지 등장하는 꿈 속에서 옛 집을 둘러싼 풍경을 지켜보곤 하던 시인은 어느새 그 자신 사라진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시간이 사라져 없는 풍경 속으로/ 오늘도 들어가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도/ 풍경이 된다 어느새”(<허물어버린 집> 마지막 부분)

그렇다고 해서 시인의 무게중심이 세계의 저쪽으로 옮아가 있다고 속단할 일은 아니다.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50년도 더 사랑해왔는데도 아직/ 우리의 사랑에선 작은 산 초록 풀 냄새가 나”(<금빛 미친 사랑 노래>)는 아내가 있다. 비록 “병든 나/ 아픈 아내”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순례하는 신세이긴 하지만 “아직은/ 그림자가 둘”(<아직은>)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그다. 요컨대 지금 시인은 ‘어느새’ 다가온 저 세계의 인력과 ‘아직은’이라며 버티는 이 세계의 중력 사이에서 서성이고 있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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