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판사 필리프 피키에가 번역 출간을 결정한 한국의 젊은 작가들. 왼쪽부터 김애란·최제훈·김이설·구병모. <한겨레> 자료사진
김애란·최제훈·김이설·구병모
현지 출판사와 번역출간 계약
“프 독자 유머 있는 작품 선호
보편적 주제로 상업성 갖춰”
현지 출판사와 번역출간 계약
“프 독자 유머 있는 작품 선호
보편적 주제로 상업성 갖춰”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프랑스 독자들과 만난다.
프랑스의 아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 필리프 피키에는 최근 김애란·최제훈·김이설·구병모 등의 작품을 번역 출간하기 위한 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제5회 세계번역가대회(22~23일)에 참가하느라 방한한 프랑스어 번역자 임영희씨는 “필리프 피키에가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김애란 등 젊은 작가 네 사람의 소설을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번역 출간 계약을 맺은 작품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과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 김이설의 <환영>, 그리고 구병모의 <아가미> 등이다. 임씨는 한국문학번역원의 프랑스어 지정 번역자이자 필리프 피키에 출판사의 한국 문학 컬렉션 기획 책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네 작가 가운데 구병모는 올 1월에 번역 출간된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위저드 베이커리>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프랑스어판 출간이 되지만, 나머지 세 작가는 프랑스는 물론 해외 번역 출간 자체가 처음이다.
임영희씨는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2013년에 출간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머지 작가들의 작품도 차례로 번역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 말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되는 김진경의 판타지 소설 <그림자 전쟁>의 번역자이기도 한 임씨는 그동안 김영하의 <검은 꽃>과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 등을 번역했으며 지금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의뢰로 편혜영의 <재와 빨강>을 번역하고 있다.
그가 한국 문단에서도 가장 어린 축에 속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임씨는 이번에 번역 계약을 체결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세계 시장에서 먹힐 만한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으며, 강력한 서사와 독창적인 상상력, 설득력 있는 구성으로 프랑스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상업성 역시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 대해서는 “조로증이라는 고통스러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풍부한 유머를 통해 주인공으로 하여금 어두운 상황에서도 밝은 면모를 잃지 않도록 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최제훈의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 대해서는 “앞 장의 내용이 다음 장들의 준거로 구실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식의 보르헤스적 글쓰기를 한국 작가한테서 보는 것이 놀라웠다”며 “많은 독서 경험에서 우러난, 빛나는 재능을 지닌 작가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또 김이설의 <환영>은 “한번 손에 들면 쉽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매우 흡인력 있는 작품”이라며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한국 현실의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면서도 외국 독자들이 읽기에도 무리 없는 보편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구병모의 <아가미>에 대해서는 “전작인 <위저드 베이커리>처럼 다른 작가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독창적 상상력이 돋보였다”고 설명했다.
임씨는 “90년대 초에 몇몇 프랑스 출판사를 통해 한국의 중견 작가들 작품이 여럿 소개되었지만 상업적으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작품성과 상업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독자들은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보다는 유머감각을 내장하고 부담 없이 읽히는 작품들을 선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 작가들이 문장을 명쾌하게 하고 동일한 단어의 반복을 피하며 한국적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보편적 주제 안에 그런 특수성을 녹여 내는 등 집필 단계에서부터 해외 독자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번역자들 역시 무조건 한국문학번역원을 비롯한 한국 기관의 지원만 바라보지 말고, 좋은 작품을 우선 번역한 뒤 현지 출판사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 쪽으로 접근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문단의 막내뻘인 네 젊은 작가의 프랑스어판 출간 계약 소식은 한국 작가들과 한국 문학 번역자들에게 분명한 낭보인 동시에 만만치 않은 생각 거리를 던져 주는 것으로 보인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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