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학’이라는 낯선 학문을 내세우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명지대 교수는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큰 병’ 하나를 들춰낸다. 다름 아니라 놀 줄 몰라 불안해하는 고질병이다. 그 병의 증상을 앓는 사람들은 주로 이런 말을 한단다. “나, 주말에 할 일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놀아도 돼?” “먹고 살만해진 게 얼마나 됐다고, 우리가 이렇게 놀 때야?” 도저히 놀지 못하겠다며 주5일 근무 이후엔 토요일마다 회사 근처에 모여 직원들끼리 함께 주말을 보내는 ‘중증 환자’마저 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새 책 <노는만큼 성공한다>(21세기북스 펴냄)에서 우리 사회가 아이엠에프(IMF)의 정신적 충격 때문인지 ‘놀면 불안해지는 병’에 집단적으로 걸려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당시 외환위기가 금융부실 탓이 명백한데도 “착하디 착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치와 게으름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닥친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금붙이를 다 내다 팔며 반성했다.” 그리고도 모자라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얘기야?’라고 말한다.
그가 “우리 이제 놀자”고 외치는 데엔 나름의 심리학적 근거가 있다. 또 지난해 주40시간 근무(주5일 근무) 제도가 처음 실시돼 2011년이면 모든 국민이 주40시간 근무제를 따르게 된 마당에 “여가문화라고는 폭탄주와 룸싸롱, 노래방” 외에 별게 없는 우리 사회에서 ‘잘 놀기’는 진지한 사회적 화두가 돼야 하지 않은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있다”고 말하는 김 교수는 잘 놀아야 창의성도 높아지고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여러 문화심리학 이론을 통해 그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한다. 재미를 아는 ‘노는 놈들’만이 익숙한 세상에서 낯선 새로움을 발견할 줄 알고,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아마도…” 또는 “혹시…”의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창의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일과 삶의 조화”는 놀이의 시대에 중요한 가치다. 김 교수는 경영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며 “직원들의 읽과 삶의 조화, 즉 밸런스를 배려하는 방식의 경영”이야말로 승진이나 급여인상보다 더 효과적으로 인재들을 모으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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