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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윤동주 마지막 원고 찾다 발견한 자아의 정체

등록 2011-10-16 20:34

구효서
구효서
구효서 새 소설 ‘동주’
‘시인의 마지막’ 기억하는
아이누족 출신 일본인 요코
재일 한국인 3세 겐타로
‘사이의 존재’ 정체성 확인
구효서(사진)의 소설 <동주>(자음과모음)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에게 바쳐진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윤동주인 것은 아니다. 윤동주는 이 소설에 다만 간접적으로만 등장한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은 윤동주보다 열서너 살 아래인 일본 여성 요코, 그리고 아마도 21세기로 짐작되는 소설 속 현재 시점에 스물일곱 살 청년으로 나오는 재일 한국인 3세 겐타로 두 사람이다. 요코는 교토 도시샤대학에 다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간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윤동주의 마지막 날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글로 남긴 인물. 윤동주가 머물던 하숙의 심부름꾼이었던 요코는 “고요한 아침”의 느낌을 주는 윤동주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다가 본의 아니게 그를 당국에 신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을 초래한다. 한편 겐타로는 일본인 친구 시게하루와 함께 도서관에서 ‘만주’라는 말이 들어가는 문헌들을 검색하고 요약하는 수상쩍은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요코와 윤동주의 존재를 알게 된다.

구효서의 소설 <동주>(자음과모음)
구효서의 소설 <동주>(자음과모음)
소설은 겐타로가 입수한 요코의 기록,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기록을 손에 넣게 되는 겐타로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면서 진행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한 번도 서로 만나지는 못하는데, 그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로 윤동주라는 시인의 존재다. 윤동주와 요코, 그리고 겐타로를 이어 주는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사이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간도(間島) 태생인 윤동주가 조선과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존재라면, 아이누족 출신인 요코는 아이누와 일본 사이에, 재일 한국인인 겐타로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 끼인 이들인 것이다. ‘사이의 존재’로서 이들의 처지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언어, 그러니까 말이다. 소설은 모두 열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작가는 그 장들의 제목에 한결같이 ‘말’을 포함시킴으로써 이 작품에서 말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코의 기록을 통해 만나는 윤동주에게 말이란 시와 문학은 물론 고향과 민족이라는 가치와도 동일시된다. 그 기록에는 간도 명동촌의 죽마고우 명준이 매우 비중있게 등장하는데, 그는 동주와 같은 시인 지망생이었으나 독립을 위해 총을 든 투쟁을 선택하고 결국 조선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민생단 사건 한복판에서 개죽음을 당한다. “조선과 조선의 말이 있어야 시도 있는 거”라는 명준의 확신과 “총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라는 동주의 회의 사이에서 작가는 분명 동주의 손을 들어 준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아이누족 출신임을 깨닫고 늦은 나이에 아이누 말을 공부하고 이름도 아이누 식인 ‘이타츠 푸리 카’로 바꾼 요코의 아래 진술은 고스란히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는 셈이다.

“나 이타츠 푸리 카가 보기에 동주의 죽음은 저항인의 죽음이 아니라, 시인의 죽음이었다.(…)굳이 저항이었다고 한대도 그것은 국가나 민족 차원의 것이었다기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모든 여지없는 것들에 대한 의도적 머뭇거림이었으며 성찰적 저항이었다.”

소설은 추리적 요소를 서사의 원리로 동원한다. 생전의 동주와도 친했던 다리 아래의 ‘현자 거지’를 통해 자신의 아이누 정체성을 깨닫게 된 요코가 윤동주의 흔적을 좇던 중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의 시와 산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요코가 남긴 기록을 통해 겐타로 역시 윤동주의 마지막 원고에 접근한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편에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윤동주의 원고와 그런 원고가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지워 버리려는 세력들이 암약하고 있다. 추적의 끄트머리에서 겐타로는 문제의 윤동주 원고가 요코의 죽음과 더불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허무한 상황에 맞닥뜨리지만, 그 대신 그는 ‘사이의 존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이 확인하고 ‘김경식’이라는 이름을 확보하게 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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