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으로 ‘2011년 올해의 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소설가 정유정씨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2 이들을 주목하라 소설가 정유정
순수와 장르문학 경계 허문
‘7년의 밤’으로 문단에 충격
“그럴싸한 작품 얼개 잡히면
석달안 초고 쓰고 1년 다듬어
문단의 평가 연연하기보다
‘진짜 이야기꾼’ 불리고 싶어” 국내 최고 전통의 문예지 <현대문학>은 매년 1월호에 문인주소록을 권말부록으로 제공한다. 올해도 총 3591명의 문인들 이름과 활동 장르가 주소 및 연락처와 함께 실렸다. 그런데 그 주소록 어디에도 소설가 정유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7년의 밤>으로 2011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정유정에 대한 문단의 ‘대접’을 현대문학 주소록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정유정은 ‘문단 바깥’에서 출현해 문단에 일대 충격을 가한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 같은 정통 등단 과정을 밟지 않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길을 택했다. 그의 공식 등단은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과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이었지만, 그 전에 그는 이미 세 권의 소설책을 펴낸 작가였다. 그는 여느 작가처럼 단편을 써서 평론가들의 상찬을 듣고 유력 문학상을 받거나 그 후보에 오르는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승부를 걸었고, 평론가들의 도움 없이 독자와 직접 만났으며,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평론가들로 하여금 그에게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문학 계간지 <자음과모음> 겨울호가 정유정 특집을 마련하고 이 잡지 편집위원들인 평론가 복도훈과 정여울의 대담과 작가론을 실은 것은 상징적이었다. <7년의 밤>은 여러 신문과 서점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출판인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을 대상 수상작으로 골랐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한국 소설 쪽으로 끌어왔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3월에 나온 이 책은 지금까지 21만부 정도 팔렸다. “작년은 정말 얼떨떨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행운이 계속 오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심리 있잖아요? 이러다가 나중에 패대기치는 것 아냐, 하는 마음…. 사실 전 대중문학이니 순문학이니 경계 무너뜨리기니 하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제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하느냐 하는 거예요.” 지난 5일 오후 만난 작가는 여전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에게는 지나간 2011년이 아직 머물러 있는 듯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7년의 밤>이 불러일으킨 반응이 너무도 폭발적이어서 그는 한동안 전화와 인터넷도 끊고 잠적해야 했을 정도였다. “11월에 신안의 한 섬에 들어가서 다음 소설 초고를 썼어요. 섬에서 3분의 1쯤 쓰고, 나와서 나머지를 썼죠.”
그러니까 그는 벌써 다음 소설 초고를 끝냈다는 것이었다. ‘꿈의 날’이라는 가제를 붙인 다음 작품이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삼은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서울과 경계를 마주한 소도시가 무대예요. 개와 사람이 같이 걸리고 양쪽을 왔다 갔다 전염되는 병이 창궐하죠. 결국 도시가 폐쇄돼요. 그 상황에서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들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죠. 개를 죽이는 임무를 맡은 119 구조대원과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젊은 수의사, 그리고 우연히 도시에 갇힌 젊은 여기자 세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인간과 개가 사투를 벌이고, 구조대원이 가족을 잃은 채 광기에 휩싸여 가는가 하면, 젊은 남녀 사이에는 연정이 싹트는 등 복합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겁니다.” 작가는 두 개의 가치 사이의 부딪침에 역점을 두고 싶노라고 밝혔다. ‘인간만 중요하냐, 아니면 인간도 중요하냐’ 하는 갈등이 그것이라고. 대략적인 이야기만 들어도 흥미가 솟구치는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그러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저는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아무리 길어도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냅니다. 일단 초고를 마친 다음 1년에 걸쳐 말이 되게 다듬고 필요한 세부 사항을 취재해서 또 고치고 하면서 초고를 완전히 벗겨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2년 터울로 신작을 발표하게 되네요. 이 소설도 빨라야 2013년 봄에나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초고를 완전한 원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을 그릴 때에도 세 가지 정도의 다른 버전을 써 놓고는 그중 가장 나은 것을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의 마지막 장면은 △승민이 병원에 불을 지른다 △산사태가 나서 상황이 정리된다 △글라이더를 이용해 탈출한다 세 가지 결말을 써 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 것을 택했고, <7년의 밤>에서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장면도 그렇게 썼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정유정의 바람은 무엇일까? “‘정유정, 하면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요. 문단의 평가에는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화씨451>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한 말 ‘나를 통해 세상을 타오르게 하라’를 10년째 책상에 붙여 놓고 있어요.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니 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니 하는 말들에는 마음이 상합니다. 저는 소설이 모든 이야기 예술의 샘이자 대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가인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7년의 밤’으로 문단에 충격
“그럴싸한 작품 얼개 잡히면
석달안 초고 쓰고 1년 다듬어
문단의 평가 연연하기보다
‘진짜 이야기꾼’ 불리고 싶어” 국내 최고 전통의 문예지 <현대문학>은 매년 1월호에 문인주소록을 권말부록으로 제공한다. 올해도 총 3591명의 문인들 이름과 활동 장르가 주소 및 연락처와 함께 실렸다. 그런데 그 주소록 어디에도 소설가 정유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7년의 밤>으로 2011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정유정에 대한 문단의 ‘대접’을 현대문학 주소록은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하자면 정유정은 ‘문단 바깥’에서 출현해 문단에 일대 충격을 가한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 같은 정통 등단 과정을 밟지 않고 독자와 직접 만나는 길을 택했다. 그의 공식 등단은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과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이었지만, 그 전에 그는 이미 세 권의 소설책을 펴낸 작가였다. 그는 여느 작가처럼 단편을 써서 평론가들의 상찬을 듣고 유력 문학상을 받거나 그 후보에 오르는 길을 걷지 않았다. 그는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승부를 걸었고, 평론가들의 도움 없이 독자와 직접 만났으며,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평론가들로 하여금 그에게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문학 계간지 <자음과모음> 겨울호가 정유정 특집을 마련하고 이 잡지 편집위원들인 평론가 복도훈과 정여울의 대담과 작가론을 실은 것은 상징적이었다. <7년의 밤>은 여러 신문과 서점이 뽑은 ‘2011년 올해의 책’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출판인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 책을 대상 수상작으로 골랐다.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독자들을 한국 소설 쪽으로 끌어왔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3월에 나온 이 책은 지금까지 21만부 정도 팔렸다. “작년은 정말 얼떨떨했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죠. 행운이 계속 오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심리 있잖아요? 이러다가 나중에 패대기치는 것 아냐, 하는 마음…. 사실 전 대중문학이니 순문학이니 경계 무너뜨리기니 하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제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얼마나 그럴싸하게 하느냐 하는 거예요.” 지난 5일 오후 만난 작가는 여전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에게는 지나간 2011년이 아직 머물러 있는 듯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7년의 밤>이 불러일으킨 반응이 너무도 폭발적이어서 그는 한동안 전화와 인터넷도 끊고 잠적해야 했을 정도였다. “11월에 신안의 한 섬에 들어가서 다음 소설 초고를 썼어요. 섬에서 3분의 1쯤 쓰고, 나와서 나머지를 썼죠.”
그러니까 그는 벌써 다음 소설 초고를 끝냈다는 것이었다. ‘꿈의 날’이라는 가제를 붙인 다음 작품이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삼은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서울과 경계를 마주한 소도시가 무대예요. 개와 사람이 같이 걸리고 양쪽을 왔다 갔다 전염되는 병이 창궐하죠. 결국 도시가 폐쇄돼요. 그 상황에서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들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죠. 개를 죽이는 임무를 맡은 119 구조대원과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는 젊은 수의사, 그리고 우연히 도시에 갇힌 젊은 여기자 세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봉쇄된 도시에서 인간과 개가 사투를 벌이고, 구조대원이 가족을 잃은 채 광기에 휩싸여 가는가 하면, 젊은 남녀 사이에는 연정이 싹트는 등 복합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겁니다.” 작가는 두 개의 가치 사이의 부딪침에 역점을 두고 싶노라고 밝혔다. ‘인간만 중요하냐, 아니면 인간도 중요하냐’ 하는 갈등이 그것이라고. 대략적인 이야기만 들어도 흥미가 솟구치는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그러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저는 일단 이야기의 얼개가 잡히면 아무리 길어도 석 달 안에 초고를 끝냅니다. 일단 초고를 마친 다음 1년에 걸쳐 말이 되게 다듬고 필요한 세부 사항을 취재해서 또 고치고 하면서 초고를 완전히 벗겨냅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체로 2년 터울로 신작을 발표하게 되네요. 이 소설도 빨라야 2013년 봄에나 책으로 나올 것 같아요.” 초고를 완전한 원고로 바꾸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장면을 그릴 때에도 세 가지 정도의 다른 버전을 써 놓고는 그중 가장 나은 것을 고르는 방식을 택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의 마지막 장면은 △승민이 병원에 불을 지른다 △산사태가 나서 상황이 정리된다 △글라이더를 이용해 탈출한다 세 가지 결말을 써 놓고 고민하다가 마지막 것을 택했고, <7년의 밤>에서 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장면도 그렇게 썼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 듯한 정유정의 바람은 무엇일까? “‘정유정, 하면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요. 문단의 평가에는 그다지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화씨451>의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가 한 말 ‘나를 통해 세상을 타오르게 하라’를 10년째 책상에 붙여 놓고 있어요.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을 지르고 싶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니 영화를 염두에 둔 소설이니 하는 말들에는 마음이 상합니다. 저는 소설이 모든 이야기 예술의 샘이자 대지 같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소설가인 걸 너무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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