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나의 토익 만점 수기
‘토익 800점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명시한 입사 서류에서 청년은 이런 목소리를 듣는다: “넌 꺼져!” 이 청년의 토익 점수는 590점. 만점인 990점을 받은 친구는 이런 겸손의 말씀을 남발하신다: “요즘 토익 만점은 뭐, ‘나 눈 두 개 달렸소’ 하는 것과 같지.” 주인공 ‘나’로 하여금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한 주범들이다.
소설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토익 590점짜리 청년이 1년간의 독한 호주 어학연수를 거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만점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감동 스토리다? 글쎄, 주인공 자신에게 묻는다면 <개그 콘서트> 사마귀 유치원의 진학 상담 선생님 일수꾼 버전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토익 만점 받는 거 어~렵지 않아요. 무작정 호주에 가서 마리화나를 재배하는 현지인의 인질이 되는 거예요. 아니면 토익 성우 출신이 하는 농장의 일꾼으로 위장취업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 눈알 하나만 잃으면 돼요. 호주 경찰은 너~무나 친절해서 치료비도 다 내 주고, 병원에서 주는 스테이크는 육질이 탱탱한데다, 동양인의 눈동자는 의안 싱크로율이 좋아서 감쪽같대요. 결국 이 ‘모자란’ 친구는 토익 만점과 한쪽 눈알을 맞바꾸게 되었다는 이야기….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취업난과 토익 열풍의 협공에 시달리는 젊은이의 몸부림을 희비극적인 어조에 담았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나무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주인공에게 던지는 원어민의 질문에 이 소설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심재천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2000원.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