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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다른 사람을 느끼는 힘이 다른 세상을 만들지

등록 2012-02-12 21:22

소설가 김연수
소설가 김연수
6월항쟁 이전 3년 배경 삼은
초능력소년의 엄마흔적 찾기
“오늘 우리 사회 모습 만든
지난 얘기들 하고 싶었다”

김연수 4년만의 장편 ‘원더보이’

“그리고 1987년 여름이 되자,/ 베드로의 집에서 국영수를 가르치던 형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고./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하려고 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뭐라도 할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김연수의 소설 <원더보이>(문학동네)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6월항쟁에서 확인된 시민의 정치의식과 참여정신에 대한 믿음이 이런 다부진 결말을 떠받치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확고하고 낙관적인 마무리는 그러나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겪어 온 일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과연 지금 세상은 그때와 비교해서 ‘완전히’ 달라졌는지, ‘예전으로’ 돌아간 게 아무것도 없는지, 그런 짓을 하려고 든 ‘누군가’를 향해 우리는 ‘뭐라도’ 한 것인지, 우리는 정말 혼자가 아닌지….

<밤은 노래한다>(2008) 이후 4년 만에 낸 새 장편에서 김연수는 독자를 지나간 80년대로 데려간다. 1984년 가을에서 1987년 여름까지가 소설의 시간대다. 주인공은 홀아버지의 과일 행상 트럭이 ‘무장간첩’이 모는 승합차에 받히는 바람에 고아가 되고 만 열다섯 살 소년 김정훈. 소설은 아버지가 남긴 수첩을 근거로, 자신을 낳고서 죽었다는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정훈의 모색을 그린다.

‘원더보이’라는 제목은 정훈이 지닌 특별한 능력을 가리킨다. 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난 소년에게는 남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 사고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을 애국적 거사로 둔갑시킨 ‘권대령’은 시국사범들에 대한 수사에 소년의 초능력을 활용한다. “그 겨울 내내 고문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고문당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권대령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에서 그의 초능력이 지닌 가치를 알아본 사람이 ‘강토 형’이다. 정훈이 방송에 나가서 눈물을 흘리자 방청객들과 시청자들까지 덩달아 울었던 까닭을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건 네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는 능력뿐만 아니라 남들에게 네 마음도 그대로 전해주는 능력, 그러니까 교감과 동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그 교감과 동조의 능력이야말로 ‘다른 세상’을 꿈꾸고 또 만들 수 있는 힘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바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

표면적으로 <원더보이>가 일찍 죽은 어미의 흔적을 좇는 소년의 모험담이라면, 그 심층에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모색과 좌절에 대해서다. 대표적인 인물이 강토 형이다. 본래 이름이 희선인 그는 학생운동을 하던 애인이 수사기관에 끌려갔다가 의문사한 뒤 남자 행세를 하면서 그 유지를 이어 가고자 한다. 강토(희선)와의 만남을 통해 정훈(과 독자들)은 언론인 강제해직과 인혁당 사법살인 같은 70년대의 사회적 아픔, 그리고 80년대의 원죄라 할 광주학살에 눈을 뜨게 된다.

김연수 장편소설 <원더보이>
김연수 장편소설 <원더보이>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딸이 이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편지조차 주고받을 수 없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거예요. 이 아이가 자라날 197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소설 결말부에서 정훈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낳기 직전 어머니가 쓴 편지를 손에 넣게 된다. 그 편지에서 어머니는 월북한 외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곧 태어날 정훈이 살아갈 미래에 대한 기대를 대비시키면서 이렇게 쓴다. 어쩐지 앞서 인용한, 베드로의 집 형들의 예측이 떠오르지 않는가. 작가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젊은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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