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2월 북한에 나포되어 원산항에 끌려온 미국 푸에블로호 선원들의 모습(왼쪽). 홍석률 교수는 푸에블로호 사건을 “위기가 고조되어야 대화가 시작되는” 북-미 관계의 기원으로 봤다.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당시 중국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와 함께 젓가락을 사용해 식사를 하고 있다.(오른쪽) 당시 미-중 관계의 개선은 남북대화도 이끌어냈으나, 이에 따라 극심해진 남북의 체제경쟁은 또다시 위기로 이어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홍석률 교수 `분단의 히스테리’
*푸에블로호 : 1968년 북에 나포된 미국 배
70년대 미 외교문서 10년 분석
‘위기→긴장완화→위기’틀 주목
“분단 고착은 장벽 때문 아니라
권력이 방치하고 책임 넘긴 탓” 남북관계는 늘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나 악수하며 웃는가 싶다가도 연평도 앞바다에서 서로 포탄을 주고받는다. 북-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핵무기 개발과 위성 발사 등으로 위기가 한껏 고조되어야 대화가 시작되지만, 결국은 또다른 갈등만 남긴 채 대화는 결렬된다. 언제나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선 도대체 어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가 최근 새로 써낸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는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외교관계 문서 등의 자료를 파고들어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낸 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는 1970년대 전반에 미-중 관계와 남북관계의 개선이 진행되던 때다. 1968년 북한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간첩들을 보냈던 1·21사태는 푸에블로호 사건, 베트남 전쟁 등과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로 남북 사이에 가장 심각한 긴장상태를 불러왔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서로 관계 개선에 나섰고, ‘데탕트’가 전개되며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치열한 체제경쟁은 다시 남북관계의 경색을 불렀고, 이런 흐름은 결국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끝난다. 지은이가 이 시기의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위기→긴장완화→위기’를 반복하곤 하는 남북관계의 첫 순환주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가다 서다가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한반도 분단체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분단상황을 장기지속시키는 역학과 구조가 무엇인지 읽어내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복잡한 상황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분단상황은 여기에 관여하는 주체들에게 ‘히스테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그럴수록 복잡한 구조를 차분하고 총체적으로 인식해서 분단체제를 제어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1968년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건’을 통해 북-미 협상의 근본적인 성격을 파헤친 분석이 새롭다. 북한은 미국에 자신의 국가적 실체를 승인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이를 꺼려 북한과 직접 협상하기를 피해왔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전으로 국내외적인 위기에 처해 있던 미국은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돌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다. 지은이는 이로부터 “적대적인 위기상황을 만들어내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북-미 관계의 ‘이상한 공식’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최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계획에서도 보듯 북-미 사이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갈등과 대화의 반복은 푸에블로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데탕트가 남북관계의 위기로 귀결되는 과정을 짚어낸 분석도 날카롭다. 미-중 관계의 개선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만들었고, 이런 긴장 완화의 흐름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데탕트는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기본 대립구도가 동서 진영대결에서 남북의 체제경쟁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했다고 한다. 남북의 집권세력은 격화된 체제경쟁을 통해 내부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나섰고, 남쪽에는 유신체제가, 북쪽에는 유일체제·후계체제가 등장했다. 결국 경색 국면에 빠져든 남북대화는 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끝났다. 분단이 고착화된 이런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분단체제가 장기 지속하는 기본원인을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라고 짚는다. “분단은 어떤 장벽 같은 것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아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들이 이를 방치하고, 책임을 타자에게 서로 전가하는 과정을 통해 유지되는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또한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전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변덕스럽고 온갖 짜증을 유발하는 ‘분단’이라는 이 복잡한 매듭은, 이쪽저쪽을 조금씩 이완시켜 느슨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풀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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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
‘위기→긴장완화→위기’틀 주목
“분단 고착은 장벽 때문 아니라
권력이 방치하고 책임 넘긴 탓” 남북관계는 늘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나 악수하며 웃는가 싶다가도 연평도 앞바다에서 서로 포탄을 주고받는다. 북-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핵무기 개발과 위성 발사 등으로 위기가 한껏 고조되어야 대화가 시작되지만, 결국은 또다른 갈등만 남긴 채 대화는 결렬된다. 언제나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선 도대체 어디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가?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사학)가 최근 새로 써낸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펴냄)는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 외교관계 문서 등의 자료를 파고들어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어낸 책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는 1970년대 전반에 미-중 관계와 남북관계의 개선이 진행되던 때다. 1968년 북한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해 간첩들을 보냈던 1·21사태는 푸에블로호 사건, 베트남 전쟁 등과 더불어 한국전쟁 이후로 남북 사이에 가장 심각한 긴장상태를 불러왔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서로 관계 개선에 나섰고, ‘데탕트’가 전개되며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남북 사이의 치열한 체제경쟁은 다시 남북관계의 경색을 불렀고, 이런 흐름은 결국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끝난다. 지은이가 이 시기의 남북관계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유는, ‘위기→긴장완화→위기’를 반복하곤 하는 남북관계의 첫 순환주기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가다 서다가 순환하는 과정을 통해 한반도 분단체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분단상황을 장기지속시키는 역학과 구조가 무엇인지 읽어내려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복잡한 상황들이 이리저리 얽혀 있는 분단상황은 여기에 관여하는 주체들에게 ‘히스테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그럴수록 복잡한 구조를 차분하고 총체적으로 인식해서 분단체제를 제어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1968년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된 ‘푸에블로호 사건’을 통해 북-미 협상의 근본적인 성격을 파헤친 분석이 새롭다. 북한은 미국에 자신의 국가적 실체를 승인하고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할 것을 요구하지만, 미국은 이를 꺼려 북한과 직접 협상하기를 피해왔다. 그러나 당시 베트남전으로 국내외적인 위기에 처해 있던 미국은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돌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밀리에 북한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다. 지은이는 이로부터 “적대적인 위기상황을 만들어내야 대화가 시작된다는 북-미 관계의 ‘이상한 공식’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최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계획에서도 보듯 북-미 사이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갈등과 대화의 반복은 푸에블로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데탕트가 남북관계의 위기로 귀결되는 과정을 짚어낸 분석도 날카롭다. 미-중 관계의 개선은 남북한으로 하여금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만들었고, 이런 긴장 완화의 흐름은 7·4남북공동성명 발표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데탕트는 한반도 분단을 둘러싼 기본 대립구도가 동서 진영대결에서 남북의 체제경쟁으로 옮겨가는 것을 뜻했다고 한다. 남북의 집권세력은 격화된 체제경쟁을 통해 내부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나섰고, 남쪽에는 유신체제가, 북쪽에는 유일체제·후계체제가 등장했다. 결국 경색 국면에 빠져든 남북대화는 1976년 판문점 도끼살해 사건으로 끝났다. 분단이 고착화된 이런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분단체제가 장기 지속하는 기본원인을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라고 짚는다. “분단은 어떤 장벽 같은 것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아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들이 이를 방치하고, 책임을 타자에게 서로 전가하는 과정을 통해 유지되는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또한 분단이 지속되는 한 완전한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변덕스럽고 온갖 짜증을 유발하는 ‘분단’이라는 이 복잡한 매듭은, 이쪽저쪽을 조금씩 이완시켜 느슨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풀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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