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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본 월가 시위…‘민주주의 직접성’의 쾌거

등록 2012-05-01 20:50

지난해 미국 월가에서 ‘점거하라’가 펼쳐지는 동안 점거자들은 리버티광장을 터전으로 삼아 체제의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선택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점거 현장을 취재한 고병권 수유너머 연구원은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드러내 보였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미국 월가에서 ‘점거하라’가 펼쳐지는 동안 점거자들은 리버티광장을 터전으로 삼아 체제의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선택해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점거 현장을 취재한 고병권 수유너머 연구원은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드러내 보였다”고 평가한다.
고병권 연구원 ‘점거…’ 출간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르포르타주>(그린비 펴냄)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르포르타주>(그린비 펴냄)
기존권력 접수하기보다는
과거의 지배원칙 중지하고
공동성 담은 삶 공간 선택
“정치가들, 계속 외면땐 파멸”

지난해 ‘세계사적 사건’으로 분출했던 ‘월스트리트 점거’는 과연 어떻게 시작됐는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로는 캐나다의 잡지 <애드버스터>의 편집자 둘이 ‘월스트리트 점거’에 대한 제안을 내놨고, 이것이 인터넷에서 큰 호응을 얻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점거가 실질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뉴욕에 체류하고 있던 수유너머 아르(R)의 연구원 고병권(41·사진)씨는 그 외에도 우리들이 알아야 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그 바닥에 깔려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8월 고씨는 뉴욕으로 건너갔다. 수유너머처럼 작은 연구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침 ‘점거하라’ 운동이 시작됐고, 그는 이 세계적 이슈의 준비 과정에서 전개 과정까지 직접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수유너머의 웹진 ‘위클리 수유너머’에 연재했다. 이 이야기가 최근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월스트리트 점거운동 르포르타주>(그린비 펴냄)라는 제목의 책으로 나왔다. 외신으로만 전해지던 ‘점거하라’ 운동을 코뮌주의와 민주주의를 연구해온 국내 필자가 자기 사유를 더해 들여다본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씨는 이미 8월 말부터 뉴욕의 활동가들이 이집트의 타흐리르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와 같이 점거 형태의 시위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특히 그는 ‘점거하라’ 내내 점거자들의 협의체가 됐던 ‘제너럴 어셈블리’의 형태가 이미 준비 모임 단계에서 나타났다는 점을 주목한다. 점거 시작 몇 달 전부터 뉴욕 활동가들과 이집트, 스페인, 일본, 그리스 등에서 온 활동가들이 리버티광장 근처에 있는 비버 스트리트에서 함께 모였고, 이 모임을 통해 이집트, 스페인 등에서 그 단초를 보였던 제너럴 어셈블리의 아이디어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너럴 어셈블리는 다양한 운동그룹과 소수자 집단들의 의견을 나누는 장인 ‘스포크스 카운슬’과 함께 점거운동의 뼈대를 이뤘다.

고병권(41)씨
고병권(41)씨
제너럴 어셈블리는 지도자나 대표 같은 중심 없이 민중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일종의 총회다. 그러나 제너럴 어셈블리의 힘이 ‘모든 사람이 참석해서 결정했다’는 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고씨는 “제너럴 어셈블리는 그것이 중대 사안들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말해 거기에 부여된 권리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민주주의의 심장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곧 그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제너럴 어셈블리 안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펼쳐내는 운동 자체다. 그는 “다양한 생각들이 만들어지고 소통되는 과정 속에 여러 개인들이 다질적인 한 신체로 엮이면서 민중적 역량, 곧 거대한 데모스의 힘이 구축된다”고 말한다.

제너럴 어셈블리의 의미를 따져묻는 것은, 고씨가 그동안 펼쳐왔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맞닿는다. 흔히 간접민주주의를 비판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대표’ 대신 ‘국민’ 전체가 곧바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씨는 “나라를 하나의 단일체로 가정하고 그 단일체가 가진 힘이라는 의미에서의 근대적인 주권 개념은 이미 ‘대표’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의 대립구도는 잘못 제기된 것”이라 비판한다.

대신 그는 ‘민주주의의 직접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그는 점거운동 내내 점거자들이 백악관과 의회로 가 기존의 권력을 접수하려 들기보다는, 리버티광장이라는 해방구에서 그동안 삶을 지배해온 기존 원칙과 방향, 규칙들에 대해 ‘판단중지’를 선언하고 그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보인 점을 짚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체제 전체를 거부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삶의 공간을 직접 만들어낸 모습 자체가 민주주의의 직접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큐파이’(occupy)에 대해 ‘탈취해서 지배한다’는 뜻의 ‘점령’과 다른, ‘함께 머무름으로써 삶의 공동성이 복원되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아 ‘점거’라는 번역어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점거운동에 대해 ‘뚜렷한 요구사항이 없다’거나 ‘운동 자체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비판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고씨는 이렇게 충고한다. “정치가들은 (점거운동이 제시한) 삶의 유형에 맞춰 정치 체제를 재설계하고 정책을 재구상해야 한다. 물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럴 경우 사회는 계속해서 ‘판단중지’를 경험할 것이고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해방구는 점점 커져 정치체 자체를 삼켜버릴지 모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그린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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