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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독설 내뱉은 ‘우리 안의 집단주의’

등록 2012-06-10 19:12수정 2012-06-10 21:22

은희경 소설 ‘태연한 인생’
소설가 ‘사랑과 위선’ 밑그림
타락한 ‘기득권 세계’ 꼬집어
비호감 인물에 여성들 매혹
아이러니한 현실에 물음던져
은희경(사진)의 소설 <태연한 인생>(창비)은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건은 모두 과거에 벌어졌고, 현재란 과거가 드리운 일그러진 그림자이거나 그 과거를 상대로 승산 없는 싸움을 거는 헛된 몸부림일 따름이다.

사십대 후반 남자 요셉은 10년 전 함께 사랑의 도피행에 올랐던 연인 류가 갑작스럽게 떠나 버린 까닭을 알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고, 류는 엄마와 아빠의 삶이라는 선례를 참조해서 사랑과 결별의 계기를 결정하며, 이안은 과거 요셉이 저지른 과오와 폭력을 응징하는 데에 현재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요셉의 지리멸렬한 일상이다. 이혼 위기에 몰린 요셉은 소설가라지만 실제로 작품을 쓰는 과정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독설과 위악으로 인간과 세계를 내치거나 아니면 순간의 쾌락을 좇는 면모가 주로 그려진다.

그런 요셉이 그리워하는 류는 소설에서 그리 큰 비중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류보다는 류 부모님의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가 더 부각된다. 부모님 삶이 던진 교훈을 현실에 대입하고 응용하는 것이 류가 삶에 임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류는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매혹’으로 요셉과 사랑의 도피행에 나섰지만, 어머니를 통해 습득한 ‘흐름’의 원리에 따라 절정의 순간에 이별을 택한 것. 그러니 요셉이 류의 결별이 던진 수수께끼의 답을 얻으려면 류의 부모님 삶의 세목에 조회해 보는 편이 더 빠를 것이었다.

한편, 한때 요셉이 소설 창작 강의를 나가던 대학의 조교로서 그가 제자 여학생에게 저지른 악행에 분개했던 이안은 이제 영화감독이 되어 요셉이 등장하는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 ‘위기의 작가들’이라는 타이틀의 이 영화에 요셉은 실물 그대로 등장해서 자신의 위선과 타락을 스스로 까발리게 되리라는 것이 이안의 작품 제작 의도. 그러나 그런 이안의 의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는데, 과거의 잘못을 정산할 생각이 없는 요셉이 이안이 겨눈 과녁을 얄밉게도 빠져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이안이 판단하기에 요셉은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한 악당이다. 당사자인 요셉의 생각은 물론 다르다.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인의 개인다움이다. 이안의 시나리오에서 자신을 대리해 악당을 응징하려는 인물 영준은 “타락한 기득권의 세계가 청춘의 순수함을 파괴하는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밝힌다. 그런 그에게 시나리오 속 요셉의 분신인 케이(K)는 말한다. “예술은 말야, 개인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려주는 거야.”

이안과 영준 들의 ‘순수’의 프리즘을 통해 볼 때 요셉은 극도로 비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적잖은 여성들이 매혹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그러나 요셉이 입만 열면 내뱉곤 하는 독설에는 무시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 그는 ‘옳은 말을 하는 나쁜 놈’인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과도한 집단주의를 혐오하며,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거짓됨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당대 문단의 풍토는 대체로 이러하다.

“평론가까지 포함해서 요즘 젊은 필자들은 작가보다는 주인공으로서의 자의식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정상이니 최고봉이니 은밀한 신경전을 벌였던 선배 세대와 달리 개인주의자들끼리의 배타적 친밀이라는 묘한 연대를 형성하여 서로를 사이좋게 견제하면서 공존하는 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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