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소설가
김중혁 새 소설집 ‘1F/B1’
갈아엎어야 직성 풀린 세상
그 사이에 낀 도시 일상에
골목같은 ‘틈’이 필요하다며
“그만 파괴해” 신랄한 항의
김중혁의 세 번째 소설집 <1F/B1(일층, 지하 일층)>(문학동네)은 일상 속의 비일상을 파고든다. 수록된 단편 일곱 가운데 분위기가 동떨어져 보이는 <냇가로 나와>를 제한 나머지 여섯 편이 모두 도시의 일상을 담고 있는데, 작가는 그 평범하고 안온해 보이는 일상에 난 틈과 균열에 촉수를 들이댄다.
표제작의 제목은 일층과 지하 일층 사이에 있는 비밀스런 공간을 가리킨다. 이 소설에서 네오타운의 여러 빌딩 건물관리자들은 ‘1F/B1’이라는 표지판 아래에 난 비밀통로로 연결되는 하나의 비밀관리실을 일종의 본부처럼 사용한다. “비밀관리실은 숫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일층과 지하 일층 사이의 어떤 곳이었고, 슬래시(/)처럼 아무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얇은 공간이었다.”
이 소설집에서 김중혁이 주목하는 대상이 바로 ‘1F’와 ‘B1’ 사이에 그어진 빗금(/)과 같은, 사이이자 틈새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숫자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은 그것이 모든 것을 0과 1이라는 두 숫자로 환원하는 디지털 시대의 원칙과 어긋나는 존재임을 뜻한다. 이 소설에서 건물관리자 윤정우가 건물관리자라는 직업의 실존적 의미를 설명한 글은 일종의 ‘사이의 존재론’으로서 더 넓은 대상을 향해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다.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하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라는 기묘한 제목(‘도시는 스케이트보드다’라는 뜻)의 소설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골목을 누비며 담벼락에 낙서를 해 대는 아이들 무리를 등장시킨다. 도시학 연구자 ‘나’는 그 아이들을 좇아 도시의 골목을 섭렵하면서 이런 꿈을 되뇐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 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다른 풍경이 이어지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슬래시 기호가 건물의 틈새라면 골목은 도시에 난 틈새라 하겠다. 디지털 원리와 경제적 효율성에 반(反)하는 이런 아날로그적 존재들은 그러나 파괴와 소멸의 운명 앞에 놓여 있다. <크랴샤>라는 단편에서 오래된 건물을 부숴 없애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으며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을 수 없다.” ‘나’는 내처 “뉴타운 건설을 위한 대규모 철거사업” 역시 비판적으로 언급하는데, 분쇄기(crusher)를 가리키는, 어법에 어긋나고 무지막지한 느낌을 주는 제목 ‘크랴샤’는 찢고 부수는 행위에 대한 신랄한 항의를 담고 있는 셈이다. 성석제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지방 소도시의 ‘주먹’(?)을 등장시킨 <냇가로 나와>에서 한 인물이 하천 정비사업 공사현장을 보며 “하여튼 갈아엎는 거 참 좋아해”라고 말할 때에도, 낡았지만 소중한 것들을 가차없이 폐기하는 시대 흐름에 대한 반감은 생생하게 만져진다.
“메마른 냇가 바닥에서 물이 솟구쳐올라 가득 차고, 수만 겹 물결이 찰랑이며 흐르고, 사라졌던 백사장이 흩뿌려지며 나타나 황금빛 햇빛을 반사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같은 소설에서 공사로 황폐해진 하천이 옛 모습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상상하는 대목인데, 이런 모습은 다만 꿈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의 주인공 소녀가 그에 답한다. “어떤 질문이든 상관없어요. 답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저한테 필요한 건 질문이에요.” 그렇다. 질문이 필요하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그 사이에 낀 도시 일상에
골목같은 ‘틈’이 필요하다며
“그만 파괴해” 신랄한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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